춤추는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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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국수
  • 나숙희수필가
  • 승인 2020.05.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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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숙희수필가
나숙희수필가

 

떠들썩했던 울창한 나뭇잎들이 조금은 조용해진 느낌이다. 이제 곧 무지개같이 찬란한 모습으로 변해갈 낙엽들 바람 불어 아무렇게나 둥글고 있는 낙엽들과 동무 삼아 놀아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재미있는 가을 여행으로 추억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겠다.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란 이채의 시처럼 살아야겠다. 벌써부터 가을 소녀가 문을 열고 급하게 들어 왔다. 덜커덩 세월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높고 맑은 가을하늘이 나를 보고 웃으니 문득 싱그러운 봄날에 엄마하고 이원 묘목 축제장에 갔던 일들이 생각이 난다.


행복했던 그 봄날이 지금 내 앞에 와있다.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에게 말을 걸어 보고 싶을 정도로 축제장 가는 길목들이 참 예쁘다. 집집마다 대문 앞 그리고 작은 정원에 갖가지 묘목 나무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내가 사는 이곳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축제장에 도착해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공연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조금 언덕 베기에 있었다. 언덕 베기에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는 일은 중노동 하는 것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보고 어느 건장한 청년이 도와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공연장에 도착하니 온통 자갈밭이었다. 산을 넘으니 더 큰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휠체어가 굴러가지 않는다. 휠체어를 한쪽에 세워놓고 엄마를 껴안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서 첫 번째 가게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공연장 무대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화려한 모습이 저절로 신이 났다. 반가운 사람들과 만나서 기쁨을 나누는 모습도 정겹다.


우리가 앉은 가계에서 사람들이 음식 먹는 소리보다 국수 끊는 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들린다.

커다란 솥단지 안에 국수가 춤을 추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득한 옛날이 보인다.


옥천장날이 되면 외갓집 가족들이 장을 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 집으로 모여든다. 나는 재빨리 밀가루를 몃 바가지 푹푹 퍼내서 반죽을 한다. 길 다란 국수 밀대로 힘껏 밀은 다음 마른 밀가루를 술술 뿌려가며 여러 번 반복해서 밀어낸다.


한석봉이 어머니가 눈을 감고 반듯하게 썰어놓은 떡보다 내가 썰어놓은 국수가 더 정확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 만큼 잘 썰었다. 펄펄 끊는 솥단지 안에 국수와 애호박 썰은 것만 넣어 커다란 주걱으로 한 번씩 저어가며 끓여 냈다.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열무김치와 함께 둥그런 상에 내놓으면 어르신들이 말없이 한 그릇 두 그릇씩 비워내는 모습에 나는 힘든 줄 몰랐다.


다 드시고 난 다음 잘라 놓은 국수 꼬랑이를 불에 구워먹는 맛이 지금의 피자 맛에 비교하지 못할 만큼 맛이 있었다.


내가 만든 국수를 맛있게 드시던 어르신들이 이젠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리다. 아니 내가 만든 국수를 먹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슬프다.


묘목 축제장 가계에서 국수가 춤추던 솥단지를 보고 나는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오래된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과거와 오늘을 왕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와 나는 구수와 부침을 시켜놓고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먹었다. 오늘의 여유가 몇 십 년 만에 놀러 나간 기분이었다.


해질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먼 길을 돌아 구부러진 길로 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동요를 부르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멀리 있는 산 능선을 바라보니 나의 인생을 그려 놓은 것 같아 눈을 떼지 못했다.


아직도 커다란 솥단지 안에서 춤추는 국수 소리가 능선을 타고 봄의 교향곡처럼 내 가슴을 열고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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