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啐啄同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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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時)
  • 김명순 약사
  • 승인 2020.05.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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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김명순
약사 김명순

 

역사에 길이 남을 2020년도 어김없이 흘러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김영랑 詩 <오월> 중)”난 5월이다.

유독 5월엔 평소보다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며 감사해야 하는 기념일이 많다. 그 중 처음 제정될 때와는 다르게 퇴색되어 버린 스승의 날은 안타까운 감정마저 들게 한다. 부작용이 만연하고 의미가 무색해진 탓에 학생들은 등교를 못 하기도 하고, 선생님께 드릴 감사의 선물조차 청탁금지법을 따져가며 준비해야 하는 실정이다.

불신 가득한 이런 사회를 조장한 기성세대가 소중한 마음을 멍들인 것이다. 사실 요즘은 어릴 적 군사부일체를 배우며 존경의 눈으로만 바라보았던 선생님의 의미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걸 실감하는 나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선생님의 줄임말 ‘쌤’이 어디서든 빈번하고 가볍게 사용-사람은 특징지어 불리는 라벨(label)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라벨효과’를 통해 좋은 사회로의 변모를 꿈꾸게 할 만큼-되고, 인터넷 상에서도 원하는 분야의 선생님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면서 그 범위가 확장된 듯 여겨지기 때문일까?


참스승은 미래를 향한 미지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존재다. 더구나 삶을 살아내며 틀을 깨고 비상하고플 때 함께 긍정적 균열을 일으켜 주는 스승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은 큰 축복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소통이 원활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제지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 제자는 배우며 스승은 가르치며 함께 성장하는 행운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줄탁동시의 적절한 사례가 되는 사제지간이 많겠지만, 르네상스적 인간의 전형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의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두 사람은 현존했던 가장 위대한 미술가로 칭송받기도―의 얘기가 먼저 떠오른다.

자연을 연구하고 관습에 도전하며 청출어람인 제자를 키워 낸 베로키오는, 금세공사로 시작해 회화와 조각까지 섭렵하며 피렌체 대성당 꼭대기의 장식품을 제작해 유명세를 얻었다. 인체의 해부학적 기법 연구를 통해 근육과 움직임 묘사에 탁월했던 그의 실력이, 레오나르도가 미소와 관계된 안면과 입술 근육을 해부하고 관찰해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를 창조하는 데 큰 영향을 준 듯하다.

메디치가의 후원까지 받을 정도였던 스승은 자신이 그리다 만 그림 《그리스도의 세례(1470)》 한쪽에 천사들을 그려 넣은 제자―1466년, 14세에 공방 견습생으로 들어온―의 놀라운 실력을 인정하며 붓을 꺾고, 그날 이후로는 그림 대신 조각에만 전념했다.

베로키오가 제자를 통해 자신의 특기를 깨달은 덕에 현존하는 기마조각상 중 걸작으로 평가받는 《클레오니 기마상》 제작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레오나르도는 타고난 체력이 뒷받침된 끊임없는 자기 계발, 특히 어려운 라틴어를 독학해 인문학 고전들의 원전을 탐독하면서 모든 예술과 과학에 정통한 시공간을 뛰어넘는 천재가 되었다.

그러나 스승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그의 천재성은, 유작들―인내심이 너무 부족한 탓에 67세까지 완성한 작품이 겨우 20점도 안 됨―과 창의적 낙서·스케치 등이 빼곡한 7200쪽의 노트(소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 유명)가 입증하고 있다.


스승의 역할은 다방면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중요하다. 급변하는 이 시대엔 지식의 전달보다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적 지혜를 가르치며 제자와 원활한 소통으로 줄탁동시 할 수 있는 스승의 역할이 더 요구된다. 어떤 선생님은 제자들 머릿속에 사고 체계의 틀이자 삶에 자양분이 되는 책장 하나를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런 훌륭한 지향을 가진 스승의 가르침은 이상적 사회 구성원을 양산하는 기반이고, 위기 상황에도 중심을 잡아주는 뿌리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국민적 슬픔과 분노를 유발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 앞에서,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같은 나라의 큰 어른이자 정신적인 스승의 부재가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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