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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암 수필가
  • 승인 2020.06.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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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암수필가
이수암수필가

 

어디로들 가는 것일까?


걷는 것보다 느린 아스팔트 위의 차량행렬들은 초조하고 짜증스런 얼굴들을 잉태한 채 어디로들 가는 것일까?


오염된 거리를 돌고 돌아 결국은 처음 떠났던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환상방황의 미로를 얼마나 더 헤매야 할 것인가? 마음 놓고 주저앉아 쉴 자리도 보이지 않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고향 길이 멀기만 한데 그리운 멧부리로 실개천으로 소박한 정 어린 그 길은 영영 잊혀진 것일까?


벗과 함께하면 더욱 좋고 홀로 걷는 오솔길도 외롭지 않던 왕솔밭 고갯길, 푸렁골 안개 속에 바짓가랑이를 다 적셔도 칡 향기보다 그윽한 우정이 쌓이던 그 길은 어디로 갔는가?


길을 본다.


고속도로가 저렇게 붐벼서야 고급차량의 위용은 무엇에 쓰며 배움의 길이 저렇게 좁아서야 가슴이 넓은 아이를 어찌 바라랴!


지식으로 팽창된 머리는 풍선처럼 부풀고 정서를 담을 가슴이 답답하도록 가냘픈데, 무엇에 쫓기는 지 자동차 경주하듯 위험스레 몰려가는 군중 속에서 경주의 대상은 있어도 다정하게 잡아 줄 손도 없이 어디론가 떠밀려가고 있는 나를 본다.


어디로 갈까?


정 고인 자국들을 가슴으로 걷자.


때 묻은 마음으로야 따라 밟을 수 없는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한 정이 흐르는 그런 길을 가고 싶다.


나에게는 삼십년을 가꾸어 온 작은 뜰이 있다. 이 뜰에서 피어 나간 꽃들이 있다. 만나고 싶은 마음, 보고 싶은 얼굴들이 있다. 더러는 시정에 때 묻고 더러는 화려하게 변신을 했어도 나는 이를 기뻐한다.


그들을 만나는 지역은 어디이고 청정지역이요 무공해의 땅이다. 열아홉 살에 이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분명히 내 의지로 선택된 길이 아니요 좀 더 화려한 길을 향해 이 길에서 벗어나려고 부끄럽게도 방황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버릴 수 없는 사랑의 길이요 고향이 되고 말았다.


언제나 새로운 만남이 있고 가꾸어야 할 꽃들이 있고, 그러기에 행복한 스승의 길을 나는 버릴 수가 없다.


무공해의 땅이요 은총 입은 여백에 내 길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아버지의 씨 뿌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어머니의 물 긷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좀 더 나다운 모습은 어떤 것일까? 적어도 내 뜰에 자라는 꽃들에겐 보다 크고 아름답게 보여야 할 텐데…….


내 자세는 군대식 직각보행도 아닐 것이며, 패션모델의 멋진 걸음걸이도 아닐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내가 가르친 그 아이들로부터 배운 느리고 둔하고 서투른 그런 모습일 것 같다.


눈을 뜬다. 흔들리는 차 속에서 복닥거리는 거리에서 밀치고 밀리며 흩어지는 사람들을 본다.

뚜벅뚜벅 걸어야지. 죽을 때까지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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