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의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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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의 청산
  • 안효숙수필가
  • 승인 2020.07.0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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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숙수필가
안효숙수필가

 

두 아이가 어렸던 시절,
하던 일이 부도가 나 살던 곳을 떠나오니 친구가 없어진 아이들이 학교 갔다 오면 엄마만 기다리고 있었다.


학원에 보내고 싶었지만 상황이 어려워 마음뿐이었다.


내 아이 또래의 초등학생들이 학원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와 재잘거리는 환한 얼굴을 보니 
엄마, 오빠하고 나하고 학원 보내주면 안 돼? 하던 딸의 얼굴을 떨칠 수가 없어 용기 내어 학원 이층 계단을 올라갔다.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지금은 못 드리고 한 달 후에 학원비 드리면 안 될까요. 하니 동글동글한 얼굴에 안경 쓴 젊은 원장님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일 년 남짓 학원을 보내게 되었다.
후로 사정이 더 안 좋아져서 갑자기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학원비는 두 달이 밀려있었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 일은 몇 달간 항시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혔지만 사는 게 워낙 힘들고 그보다 더한 일이 생기다 보니 학원비는 아주 미미한 일이 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3년 전인가 불시에 며칠이고 그 일이 떠올라 돈을 마련해서 학원이 있던 곳을 찾아갔다
학원이 있던 자리는 사라지고 택시 승강장이 되어 있었다.
몇몇 기사분한테 학원이 어디로 갔냐고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고 했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돌덩이 하나 삼킨 듯 가슴이 답답했다.


며칠 전 그 지역에 사는 분과 만날 일이 있었다.
부탁 좀 하나만 들어주세요. 하고 18년 전에 있었던 학원 이름을 적어주며 원장님 좀 찾아달라 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커서 전화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때 돈이 없음에도 학원에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찾아간 것처럼 용기 내어 전화를 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18년 전 저희 아이를 학원에 보냈는데 그때 상황이 어려워 학원비를 두 달 치 못 드리고 왔네요. 너무 죄송합니다. 
그래도 원장님 덕분에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이라도 학원비를 드릴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이렇게 찾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말이 없던 건너편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처럼 떨렸던 건지 뭉클함이 느껴졌다.


전화 준 거로도 학원비 보다 더 한 것을 받았다며 한사코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학원 운영이 어려워 정리하고 지금은 대추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제가 대추를 좋아하니 그럼 대추를 좀 구입해야겠다 하니 그제서야 계좌번호를 전해주었다.
다음날 받은 택배 상자를 여니 달큰한 대추내음이 나를 마냥 행복하게 한다.
한층 발걸음이 가벼워진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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