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운동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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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운동신경
  • 정일규 한남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9.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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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규 한남대학교교수
정일규 한남대학교교수

 

교양체육이나 전공실기과목에서 구기나 라켓종목을 가르치다보면 운동기술을 습득하는데 개인차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똑같이 처음 접하는 종목일지라도 어떤 학생은 쉽게 익히는 반면에 어떤 학생은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된다. 특히 한 두 번의 시범을 보고 어려운 동작을 쉽게 따라하는 학생을 보면 그 운동신경에 부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운동신경이 좋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내 나름의 정의를 내리자면 근육을 조절, 제어하여 상황에 가장 필요한 움직임을 적시에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미에서 개인 간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그 차이는 두 가지 조건에 의해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그 첫 번째 조건은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즉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공간감각정보를 받아들여서 뇌에서 처리하는 능력이다. 컴퓨터로 치자면 중앙처리장치(CPU)인 셈이다. 컴퓨터에서 기가헤르츠(Ghz)라던가, 듀얼코어니 쿼드코어와 같이 CPU의 성능을 나타내는 말이 있는데, 이 성능이 좋을수록 들어오는 정보를 일시에 처리하는 속도가 높아진다. 이로 인해 적시에 가장 필요한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

탁구를 예로 들면, 상대편에서 공을 넘길 때 쇼트로 넘길지, 강한 스매싱으로 넘길지, 아니면 공에 회전을 주어 커트로 넘길지를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공의 궤적과 스피드, 공의 회전여부에 대한 정보를 눈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인체 내부의 근육과 관절의 위치, 움직임에 대한 정보도 시시각각 이 중앙처리장치에 입력되고 처리되어 통합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즉 수비적으로 받아 넘길 것인지, 아니면 반격을 할 것인지, 공에 회전을 줄 것인지, 어느 코스로 공을 보낼 것인지를 짧은 순간에 결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근육을 조절, 제어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뇌의 판단에 따라서 필요한 근육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렇게 인체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은 뇌와 근육사이의 신경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뇌의 정보처리기능이 아무리 좋아도 필요한 근육을 적시에 움직이거나 제어하지 못한다면 적합한 움직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 움직임은 뇌로부터 척수를 통해 근육으로 내려가는 신경자극의 경로를 형성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근육에만 자극을 내려 보내고, 그 외의 경로로 내려가는 신경자극은 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경경로의 형성은 반복적인 연습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는데, 여기서 개인마다 차이가 나타난다.

물론 이 두 가지 능력에는 유전적 요인이 꽤 관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후천적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다. 어린 시절에 어떠한 경험을 했는지가 이 운동신경의 발달에 매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흔히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는 스포츠스타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특정 운동이 주는 엄청난 흥미와 재미가 이끄는 대로 마음껏 놀았다는 점이다. 또 특정 운동은 아니더라도 어린 시기에 당연히 존재하는 내부로부터의 에너지를 놀이를 통해 분출시킬 기회를 가졌다는 점이다.

태어나서 몇 년간의 시기는 뇌와 신경계가 구조적으로는 거의 완성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기능적으로도 발달이 가장 크게 일어나는 시기이다. 또 그 발달을 위한 내적 본능(drive)이 가장 왕성하게 일어나는 시기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발달본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어린아이들에게 마련해주고 있는지 물어보게 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과연 놀이를 위한 적합한 환경을 갖고 있는가? 그 놀이를 지도할 적절한 소양과 전문성을 가진 인력을 양성할 시스템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운동신경이 좋다는 것은 경기장에서만, 운동선수에게서만 요구되는 능력일까? 그 답은 아니다이다. 운동신경은 모두에게 더 풍족하고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조건이다. 그 능력은 아주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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