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원의 행복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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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 원의 행복한 고민
  • 나숙희 수필가
  • 승인 2020.09.1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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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숙희 수필가
나숙희 수필가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스치니 가을이 조금씩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 있는 친구의 목소리도 듣고 싶고 지인들과 멋있는 카페에서 차도 한잔 마시고 싶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여유를 부렸나 그냥 웃음이 나왔다. 쫒기는 세월을 보내느라 제대로 함께 놀아본 계절이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소. . 행을 누려보고 싶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자는 말이다.

지난 금요일 저녁엔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숲속의 아름다운 곳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빨간색 국물이 펄펄 끓고 있는 양푼이 동태찌개가 우리들의 우정을 더욱 진국으로 만들어 주었다 맛이 일품이다. 우리는 맛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면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가장 어린 귀여운 동생이 목소리를 높여 생일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신나는 일이라도 있는 듯 싱글벙글 웃는 그 동생이 말을 했다. 자기 남편은 결혼기념일과 생일에는 꼭 기억을 하고 멋있는 곳에서 근사한 이벤트를 해준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그이야기에 아차 내생일이 9월이었지 라고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동생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나는 행복 합니다 얼굴에 쓰여 있는 동생의 모습이 우리들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동안 내 생일이 언제인지 잊고 살았다. 매년 생일이 돌아오지만 우리 남편은 나에게 한번 도 밥을 사 준적이 없다. 밥이 아니라도 짜장면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그저 바람뿐이었다. 나는 큰 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상함과 따뜻한 마음을 바라는 것이다. 생일이 특별한건 아니지만 나도 친구들에게 조금 부풀려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내 인생의 가장 황금기였던 젊은 날 친구들은 생일날 아주 비싼 목걸이와 반지 그리고 예쁜 장미 꽃다발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나는 부러워서 은근히 속이 부글부글 끓고 마음이 흐린 날이 있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여자인 것 같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새운 적이 있다.

그해 생일날 아침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탕탕 그릇을 부딧치면서 설거지를 했다. 속상한 마음을 풀기위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그릇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남편이 부뚜막 위에 슬그머니 만원 한 장을 놓고 갔다. 아마도 내 생일 때문에 내가 화가 나고 있는 것을 알았나보다. 나는 더 크게 그릇을 부딧치면서 설거지를 하는 바람에 큰 접시하나가 쨍그랑 하고 깨져버렸다. 남편은 신경이 쓰였는지 또다시 만원 한 장을 슬그머니 놓고 갔다.

나는 속으로 내가 하는 행동이 남편에게 먹혀 들어가는 것 같아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과 내 마음이 조금은 고요해졌다. 낙엽이 조금씩 떨리고 있는 이 가을에 그때 그날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내 마음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들었다.

이제 일주일이 지나면 내 생일이 돌아온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나에게 선물을 주지 않아도 밥을 사주지 않아도 남편이 아무런 이유 없이 얼굴만 보아도 사랑스럽다. 내 옆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내 생일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을 위해 정성껏 만든 밥상에 환한 미소로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하면서 밥을 먹을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행복인 것을 오랜 세월을 건너서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점만 지닌 완벽한 사람도 없고 단점만 지니고 있는 미숙한 사람도 없다. 지금 까지 살아오면서 크게 얻은 지혜는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함께 살아 있음에 행복하다. 이렇게 감사함을 갖는 자세였다.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똑같이 일찍이 남편과 밥상을 마주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몃 일 있으면 당신 생일이지? 하면서 하얀 봉투를 내 밀었다. 남편은 힘 있는 목소리로 봉투한번 열어보라고 했다. 나는 얼떨결에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엔 오만 원짜리 지페가 두 장 들어 있었다. 갑자기 받아본 봉투에 나는 말을 더듬으면서 왠일로....... 하면서 말을 흐렸다. 내심 좋으면서 봉투를 잡은 손은 떨고 있었다.

이 돈으로 무었을 할까 가슴이 벅차면서도 고민이 많았다. 다 떨어져가는 화장품을 살까 아니면 지인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자랑을 할까도 생각했다. 예쁜 스카프 목에 두르고 영화 한편도 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수필집도 사고 싶다. 생각만으로도 행복이 넘쳐난다. 오늘은 하루 종일 맛있는 반찬 만들어서 남편과 함께 기쁨을 누려 겠 다. 지친 일상에 단비가 내린 것 같다. 나는 지금 십 만원 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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