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시인 이옥봉
상태바
여류시인 이옥봉
  • 김수연기자
  • 승인 2020.09.17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암울한 시대가 꺾어버린 꽃
『조선의 여류시인 미인도』에 그려진 이옥봉
『조선의 여류시인 미인도』에 그려진 이옥봉

 

황진이, 허난설헌, 이매창과 함께 조선의 뛰어난 여류시인으로 알려진 이옥봉의 본명은 이숙원으로, 57대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특히 시작(詩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서녀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옥돌이 솟아오르듯 아름다운 봉오리라는 뜻인 이숙원의 호 옥봉도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17세에 첫 혼례를 치렀지만 남편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요절한 까닭에 옥봉은 집으로 돌아와 슬픔에 잠겨 독수공방한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그녀는 이 비극을 극복하고 한양으로 올라가 더 넓은 세계를 탐구하기로 마음먹는다. 한양에 도착해 기거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시를 나누던 옥봉은 어느 날 운명의 상대 조원을 만난다. 조원에게 강렬한 이끌림을 느낀 옥봉은 조원을 직접 만나 사랑을 고백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하고 상사병을 앓는 지경까지 가게 되는데, 이를 보다 못한 이봉이 직접 조원과 그의 장인어른을 차례대로 찾아가 옥봉을 첩으로 받아 달라 간청한 끝에 조원과의 혼인을 성사시킨다.

마침내 옥봉은 1564년에 조원의 첩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조원은 옥봉에게 결혼 조건으로 더는 시를 쓰지 말 것을 제시하고 옥봉이 이를 수락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와 함께 다니며 고관, 명사들 앞에서 시를 짓고 읊었다는 기록도 있어 어느 쪽이 맞다고 단언할 순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꿈에 그린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옥봉이 누명을 쓰고 잡혀간 백정 아내의 부탁으로 그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시를 써줬고 이 시를 통해 백정을 구할 수 있었으나 아녀자가 조정의 일에 끼어들어 남의 귀와 눈을 번거롭게 했다는 명목으로 조원에게 원망을 사 그의 집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옥봉은 남편에게 버림받은 처지였지만 그를 원망하지 않고 그리워하며 대표작 몽혼을 비롯한 여러 시를 남겼다.

1592,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어수선하던 때 옥봉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옥봉의 죽음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 있는 문헌은 없으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따르면 중국의 해안에 시체가 떠돌아다녀 건져보니 온몸에 종이를 수백 겹 감고 죽어있었다. 노끈을 풀어 종이를 벗겨내니 안쪽의 종이에 시가 빼곡히 적혀있고 한쪽에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 적혀있었다고 전한다. 이옥봉은 그렇게 출신과 성별을 뛰어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재능을 가졌으나 결국 시대에 의해 꺾여버린 꽃으로 남게 됐다. 다음은 조원에 대한 이옥봉의 절절한 사랑이 돋보이는 대표작 몽혼의 전문이다.

近來安否問如何(요즘 안부를 묻습니다. 당신 잘 계신지요.) / 月到紗窓妾恨多(달 비친 비단 창가에 제 슬픔이 깊습니다.) / 若使夢魂行有跡(만약 꿈속 혼이 다닌 길에 자취가 남는다면) / 門前石路半成沙(임의 문 앞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몽혼한시 해석 옥천의 역사인물 참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