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10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당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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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10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당면 과제
  •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 승인 2020.09.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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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 소장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 소장

 

1. 경술 국치일의 기념일 제정 필요성

2020829일은 경술국치 110주년이 되는 치욕적이고 슬픈 날이다. 8.15 광복절은 국경일로 해마다 경축행사를 하고 있어 누구나 다 잘 알고 기리고 있지만, 829일은 국치일로 대부분 창피하게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쳐 버려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해방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매년 829일이 되면 선언서를 발표하거나 기념식을 열었다. 만주 동포들은 '국치추념가'(작사 검소년) 4절을 부르며 이날을 곱씹었다.

 

1절 경술년 추팔월 이십구일은 / 조국의 운명이 떠난 날이니 /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여라 / 갈수록 종 설움 더욱 아프다

2절 조상의 피로써 지킨 옛집은 / 백주에 남에게 빼앗기고서 / 처량히 사방에 표랑하노니 / 눈물을 뿌려서 조상하리라

3절 어디를 가든지 세상 사람은 / 우리를 가리켜 망국노라네 / 천고에 치욕이 예서 더할까 / 후손을 위하여 눈물 뿌려라

4절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때니 / 아픔과 슬픔을 항상 머금고 / 복수의 총칼을 굳게 잡고서 / 지옥의 쇠문을 깨뜰지어다

 

국가의 치욕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다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현 문재인 정부는 임시정부에서 제정하고 기념한 ‘3·1’, ‘개천절’, ‘순국선열기념일등은 모두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국치일은 기념하지 않고 있어 아쉽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안다는 것은 과거를 바르게 알고 현재를 직시하여 미래에는 과거와 같은 불행했던 일이 없도록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다.

 

2. 1910829일 한일병탄 문서 조인

1910822일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일당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우리 주권을 일본에 송두리째 넘겨주는 한일병탄 문서에 조인했고, 829일에는 이를 공포함으로써 27519년 만에 조선왕조는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대한제국이 식민지로 전락하자 일제가 경복궁 근정전 앞에 일장기 2개를 게양해 놓고 35년간 가혹한 식민통치를 했다.

 

그래도 충신인 학부대신 이용직은 "이 같은 망국 안에는 목이 달아나도 찬성할 수 없다"라고 반대하면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강제 병합조약 직후 역사학자이자 시인인 황현, 참정대신(현재의 부총리)인 한규설, 의정부 참찬을 역임한 이상설 등 일부 지식인과 관료층은 이를 일방적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늑약으로 보고 극렬하게 반대의사를 표현했다. 또한 경상도 안동 출신의 이만도는 단식으로, 충청도 괴산 출신의 금산군수 홍범식은 목매달아서 순국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3.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

그 후 35년 동안 우리 백성들은 일제의 억압적인 식민통치 아래 온갖 핍박을 당해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 우리의 말과 글도 사용하지 못하고 강제로 창씨개명을 했으며 젊은 여성은 위안부로 청년들은 강제노동 현장과 태평양 전쟁터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거나 죽음을 당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모두 9명의 조선총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무단통치를, 미나미 지로는 무자비한 공출과 황국신민화를, 도조 히데키는 우리나라를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는 전진기지로 삼아 악명 높은 대표적인 총독들로 알려지고 있다.

경술국치 110주년을 맞아 우리는 조기를 달고 기념하며 망국의 원인을 밝히는 동시에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국난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4. 대한제국 멸망 원인

대한제국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가장 큰 원인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세계정세와 고종과 순종의 무능 그리고 이완용·송병준 등 친일파들의 매국 행위에 있다. 실제로 일본은 1863년 명치유신을 계기로 문호개방과 부국강병을 이루고 서구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편승하여 무신무력겁박으로 조선을 강점했다.

대한제국의 고종과 순종황제는 황실의 안녕과 보존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여 의병운동과 동학농민혁명, 독립협회를 탄압하는 바람에 민력을 진작시켜 부국강병과 독립자주의 기초를 다지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이완용, 송병준, 이용구 등 친일매국노들은 황실 보존과 사리사욕에 혈안이 돼 한일병탄을 성사시키는 데에 앞장섰다. 이완용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과 1910년 국권 침탈이라는 굵직한 사건들을 주도한 일로 친일파의 대명사로 기억된다. 동시에 송병준·이용구는 대중을 상대로 여론을 조성하면서 일제 강점에 필요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들은 친일 조직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그래서 이들의 '공로'가 결코 이완용에게 뒤지지 않지만, 역사는 '친일 1' 이완용만을 기억한다.

 

5. 국난극복을 위한 당면 과제

이제 경술국치 11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먼저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악행을 고발하여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특히 전국에 산재해 있는 친일매국노의 땅을 정밀 조사하여 강제로 국유화하고,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한일 국교 정상화로 위안부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강제노동 배상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무역 역조 문제, 강탈해간 문화재 반환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야 한다.

또한 잘못된 우리 역사를 반성하고,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국난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8.29일 국치일도 기념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역사교육과 민족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강화하고, 국가보훈처가 아직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들 (특히 사회주의 계열)을 찾아내 훈장을 수여하고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화도 조약(1876), 을사늑약(1905), 한일병탄(1910)으로 이어진 일제의 국권 침탈은 결국 망국의 아픈 결과를 낳았지만, 한일 병탄조약 조칙에 대한제국 국새 날인과 순종의 서명이 없어 무효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다수 있다. 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만큼 그런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경술국치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리고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이어지는 최근의 상황을 다시 상기시키며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게시물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일제에 의한 한일 강제병탄 국치일을 잊어버린다면 나라가 어떻게 망했는지 모르는 것이라며 민족교육을 위해서 조기 게양은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다. 그런가 하면 2019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하여 전국 시도교육청이 역사 전공 대학교수, 역사·음악 교원, 민족문제연구소 등 전문가 그룹으로 T/F를 구성하고 학교 상징(교훈, 교목 등), 교가, 석물, 학생생활 규정 등에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 잔재 청산에 앞장서고 있다. 그리하여 재야 민족사학자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앞으로는 전국적으로 더욱 더 활발하게 전게될 것 같다.

 

6. 국치일 11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조기 달기 운동 전개

서울 구로구, 제주, 전주, 의령, 공주 등 지자체가 경술국치 110주년을 맞아 일제에 의해 나라를 잃은 슬픔을 되새기고 애국정신을 고양하며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기 위해 관내 관공서와 공공기관, 민간기업, 단체, 시민 등을 대상으로 조기 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기는 깃봉에서 깃면의 너비(세로길이)만큼 내려서 게양하며, 함께 게양하는 다른 기가 있을 경우 같이 조기로 게양해야 한다. 다만, 축제 분위기를 조성할 때 다는 차량 기와 도로변 가로기는 게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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