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대 군의원, 10대 도의원 지낸 박한범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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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대 군의원, 10대 도의원 지낸 박한범 전 의원
  • 김병학기자
  • 승인 2020.10.15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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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않은 행동으로 유권자에 실망 드려 죄송, 지난 세월 제 자신 힐책하며 자성의 시간 가져”
박한범 전 도의원은 지난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에 대한 반성과 힐책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유권자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했다.
박한범 전 도의원은 지난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에 대한 반성과 힐책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유권자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했다.

“지난 날에 대한 반성과 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제5·6대 옥천군의회 의원과 제10대 충청북도의회 의원을 지낸 박한범(59) 전 의원.
12년이라는 세월 동안 공인의 신분으로 삶을 산 박 전 의원은 여느 선출직 인물과 달리 많은 부침을 겪었다.
출발부터가 민주노동당이라는 당 특성도 특성이지만 시대적 상황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지지해 준 유권자들로 하여금 실망을 주지 않으려고 동료 의원들보다 두 세배 노력을 기울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흔들림이 3년 전 청주 홍수 때 동행했던 해외연수가 그것이다.
당시 해외연수는 홍수가 나기 전 이미 계획된 것으로 피할 수 없는 상황 하에서 이루러졌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이해하지 않았다. “어떻게 물난리로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외국으로 놀러 갈 수 있느냐, 그렇게 한가하냐” “국민들은 죽든말든 자기들만 즐기면 되는 건가”라는 등등 한동안 질타가 계속됐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분명 국민들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핵심요원 낙인 ‘배제징계’당해


박 전 의원은 본시 옥천군 6급 공무원이었다. 어느 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결성이 전국적으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타고난 성격상 불의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에 이때부터 노조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명색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창립멤버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나 여권에서는 노조에 대해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던 시절이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노조 결성 운동으로 2,000명 넘는 공무원들이 ‘배제징계’를 당했으며 이 가운데  143명의 핵심요원들은 공직에서 쫓겨나는 결과를 맞고 말았다. 아직도 당시 해직된 공무원들은 복직을 놓고 정부와 씨름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2006년 치러진 제5대 옥천군의회 의원에 도전했다. 당연히 당선됐다. 그것도 ‘민주노동당’ 당적으로. 개표 결과는 놀라웠다. 당선자와 차점자와의 차이가 너무도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군민들은 박 전 의원에 대한 지지와 활동력에 후한 점수를 줬다.
이후 2019년 제6대 군의원 선거와 제10대 충북도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당선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17년 발생한 청주 홍수가 정치인생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그토록 믿고 응원을 보냈는데 유권자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줬다’는 너무도 평범한 진리 앞에 박 전 의원은 속절없이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누구를 탓할 것도,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었다. 모든게 나 자신의 불찰과 무지함으로 발생한 일이기에 겸허히 받아 들였다. 그리고 조용히 정치와 이별을 고했다.

 

다양한 조례 입안


그렇다고 박 전 의원이 무의미한 정치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군의원 시절에는 친환경 농자재를 사용토록 하는 ‘학교급식조례’를 옥천군의회 역사상 최초로 입안했으며 도의원 시절에는 충북도청 남부출장소에 대한 권한이양을, 충북도립대 기숙사 확충 등을 이뤄냈다. 특히, 옥천읍 매화리에서 동이면 적하리로 이어지는 501호 지방도에 대해 4차선으로 확포장 한 것도 그가 남긴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이후 박 전 의원은 생계를 위해 전국을 떠돌았다. 고향 옥천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없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전직 의원이라는 명함이 오히려 그를 더 힘들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옥천을 떠나 인근 세종시로 터전을 옮겼다. 그곳에서 지인과 함께 건설현장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런 그가 지난 추석을 지나면서 다시 고향 옥천으로 돌아왔다.
“다시 고향에 돌아와 기쁩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제 자신을 많이 힐책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부터는 지난 세월 저를 지지해 주신 여러 유권자들과 지역 선후배들의 충고에 귀 기울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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