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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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 동탄 이흥주
  • 승인 2020.10.1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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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농사꾼인지 모르겠다. 밭뙈기 조그만 거 부치며 자칭 농사꾼이라곤 하지만 한참 부족하다.
글도 그렇다. 내가 글을 쓰지만 글쟁이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것도 자신없고 저것도 자신없고.
그럼 뭔가. 자신은 없어도 그냥 열정으로 밀어 붙이는 사람, 내가 그렇다. 그래서 무모하지만 오늘도 밭에 가서 열심히 농작물을 돌보고 집에서는 틈만 나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글은 십여 년 하다 보니 그래도 좀 수월한 느낌이 오는데 젊어서부터 해 나온 농사는 항상 힘에 겹다.
요즘은 ‘나이롱 농사꾼’이 많다. 농사라곤 모르다가 직장 퇴직하고 농사에 임하는 사람은 자칫 나이롱이 될 수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농사가 경험도 없이 황혼에 해보려면 나락을 봄에 심는 건지 가을에 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힘만 갖고 되는 일도 아니다. 이것도 배워야 하고 많은 준비를 갖추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초고속으로 나라를 발전시키며 하면 된다는 믿음이 철칙처럼 몸에 배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에 열손가락 안에 드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다. 한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노력한 만큼 안 되는 게 있다. 농사가 그렇다.
다른 건 하면 할수록 숙련가가 되어 추앙받는 장인이 되고 달인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농사는 아니다. 날씨에 영향을 받고 매년 다르게 오는 병충해에 시달려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올 해가 그렇지 아니한가. 고추를 자가소비용으로 매년 심는데 올해 초반 작황이 정말 좋았다. 참깨도 마찬가지, 밭에 갈 때마다 입이 귀밑까지 벌어졌다. 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적당히 비 오고 적당히 햇볕 쬐고 농작물에 최적의 날씨가 계속되었다.
좋은 일이 오래 지속되면 좋지만 어디 그런가. 좋은 것일수록 유효기간이 짧은 것 같다. 농사에 좋은 날씨는 봄뿐이었다. 올해는 가장 긴 장마를 치러야 했고 태풍이 세 개나 거푸 강타했다. 고추에 병이 나기 시작하고 참깨가 짓물렀다. 이런 때 농사꾼의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고추와 참깨는 비가 많이 오면 안 좋다. 그것 뿐이 아니고 지나친 빗물은 모든 작물에 해롭다. 적당히 라는 말은 농사에도 들어 맞는 말이다.
왜 코로나다 무어다 모든 게 힘든 것뿐인데 날씨마저 이런지. 좋지 않은 일이 한꺼번에 닥쳐오니 감당하기가 버겁다. 지금 또 돼지에게도 병이 온 모양이다. 모든 안 좋은 일이 뭉쳐서 달려들고 있다. 지금까지도 정신을 차리고 왔지만 더욱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안 되겠다.
올핸 모든 게 흉년이다. 지금 벼 수확을 하고 있지만 벼도 흉년이다. 옛날 같으면 또 고난의 길이 기다릴 것이다. 지금이야 수입을 해서라도 충당을 하겠지만 이것도 우리가 열심히 일해 돈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다 부족하지만 김장채소는 어떨지 모르겠다. 고추가 병이 나서 그걸 제거하고 배추를 심은 농가가 많아서다. 지금 금값인 김장채소라도 풍작이 되면 좋겠다. 농사꾼이야 귀해서 제값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수급이 충분해서 가격이 안정 돼야 한다. 농산물을 수입 한다 해도 국내생산이 많이 돼야 물가가 안정이 되고 인심도 평안해 진다.
한데 비가 너무 와서 망치더니만 이제는 또 가무는 상황이다. 좁게 내 주위만 보고 하는 소리지만 가을 들어 비가 귀하다. 들깨도 수확 철인데 그냥 겉말랐다. 요즘 난 채소밭에 물 주느라 팔이 많이 아프다. 바로 밭둑 밑에 수로가 지나지만 나락을 수확하며 수로의 임무도 끝나 물도 안 내린다. 양수기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간신히 조금 받아놓은 빗물을 물뿌리개에 담아 배추포기에 줘 보지만 단솥에 물 제기기다. 물도 주려면 흐뭇하게 주어야지 찔끔 주면 도움이 안 된다.
아무리 문명이 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시 농사는 하늘이 돕지 않으면 힘들다. 지하수를 파고 시설을 갖추면 되겠지만 그래도 하늘의 도움은 필요하다. 가뭄은 극복을 한다 하더라도 비가 자주 온다면 일조량이 부족해서도 농사는 잘되지 않는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퇴색해서 요즘은 잊어버린 말이 됐다. 지금 그 말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지만 그 의미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모든 건 이것의 토대위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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