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운동간다 - 코티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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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운동간다 - 코티졸 이야기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교수
  • 승인 2020.11.1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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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은 두 달째 코로나19로 직장에서 휴직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들려오는 소식은 회사의 경영상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언제 복직이 될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심한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소파에 느슨하게 기대서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보고 있던 프로그램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채널을 돌리려고 리모컨이 어디 있는지 둘러보았다. 리모컨을 몇 걸음 뒤의 식탁에 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점점 더 그 프로그램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없는 피로감이 온 몸에 스며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몸에서 모든 기(氣)가 빠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는 전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피로감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후 세,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이 증세가 찾아왔다. 단순한 식곤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병원에 가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숙이 겪고 있는 문제는 ‘부신피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부신은 콩팥위에 붙어있는 호두만한 크기의 호르몬분비 기관이다. 
부신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스트레스 호르몬들을 만들어서 분비하는 일이다. 이 호르몬들의 작용은 위험한 상황에서 인체를 대비하게 한다. 그 중에서 부신피로와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이 ‘코티졸’이다. 
현숙은 복직하거나 새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슬그머니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사실 스트레스가 현숙의 증세를 촉발시킨 가장 큰 원인이었다. 거기에다 수면이상과 식습관의 문제가 누적되어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방 등 조직세포에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생성과 분비가 증가한다. 염증성 사이토카인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HPA축)을 통해서 코티졸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코티졸은 염증을 억제하고 스트레스에 잘 대응하도록 해준다. 
문제는 면역계가 스트레스로 인해 만성적인 경계상태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HPA축이 지속적으로 반응하다보니 HPA축의 반응이 점차 둔화된다. 
그 결과 부신이 더 이상 ‘코티졸’을 잘 생성하지 못하게 되는 ‘부신피로’가 초래되는 것이다. 이 부신피로의 증세는 무기력증과 피로, 근육통, 관절통, 체중손실, 수면이상과 우울증 등을 특징으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운동선수들도 이와 비슷한 기전에 의해 초래되는 ‘과훈련증후군(overtraining syndrome)’이라는 증세를 보인다. 즉 과도한 훈련이 반복되고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하면 앞서의 HPA축에 의한 스트레스 반응경로가 과도하게 자극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부신에 의한 코티졸생산이 떨어지게 된다. 이로 인한 전형적인 증세가 ‘다리가 무거운’ 느낌을 호소하는데 이 단계에서는 쉰다고 하여도 피로감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긴 슬럼프를 겪게 된다.  
일반적으로도 현숙과 같은 증세는 적지 않게 나타난다. 그녀의 생활을 살펴보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생활리듬이 올빼미 형으로 바뀌게 되었다. 자꾸 가라앉는 몸을 깨우기 위해서 너무 많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런 탓인지 너무 늦게 잠을 자고 수면도 부족한 상태이다. 또 식사는 불규칙해지고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모두가 체내에 염증성 반응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원인이다. 그로 인한 HPA축의 지속적인 자극에 의해 부신에서의 코티졸생성이 고갈된 것이다. 
이 경우 비타민 복합체, 특히 비타민 B5라고도 불리는 판토텐산이 코티졸 생성에 도움을 준다. 또 감초뿌리에 많은 글리시리진(glycyrrhizin)은 코티졸의 분해를 늦추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카페인이나 설탕, 술, 인스턴트식품은 끊어야 한다. 체내 만성적인 염증반응을 자극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증세가 심하면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지만 몸의 상태를 봐가면서 가벼운 산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몸이 적응되면서 조금씩 산책거리를 늘리고 운동량을 늘려나가는데 이는 생리적이자 심리적, 정서적인 접근법이기도 하다. 결론은 역시 ‘피곤하니까 운동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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