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 『닭니』중] 할머니 함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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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 『닭니』중] 할머니 함께 살아요
  • 강병철작가
  • 승인 2020.11.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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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면 무조건 큰아버지 집에서 지냈다. 우선 집에서보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없었으므로 나도 큰아버지네서 지내는 것이 좋았다. 다음으로 부잣집이라서 맛있는 것도 많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이가 죄다 빠져서 사과를 먹으려면 숟가락으로 긁어서 잡수셔야 했다. 그 옆으로 날마다 손주들이 오그르르 매달렸다. 할머니나 아이들이나 그게 행복했다.


나는 다른 형제들이 많을 때는 할머니 옆에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보다 다른 형제들을 더 좋아할 것 같다는 막연한 열등감 때문이다. 그만큼 고통그러웠다. 선옥이 누나가 할머니 옆에 기대고 있는 것만 봐도 가슴이 허허롭게 뻥 뚫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무도 없을 때만 할머니 옆구리에 붙어 비실비실 어깨에 기대곤 했다. 왠지 나에게는 그만큼의 사랑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 할머니들이 밤마실 오셔서 얘기하던 중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얘가 나를 가장 잘 따라융. 젤 좋아헤유.”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할머니도 나를 좋아하는구나.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할머니도 내가 좋아하는 걸 아시는구나.
드디어 자신감이 생겼다. 그 후 방학 내내 할머니 곁에 붙어 지냈다. 할머니 품에 안겨 젖을 만지며 잠을 잤다. 그랬다. 할머니가 있어서 방학은 행복했다. 문제는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간다는 현실이다. 날마다 두근두근했다.


달력 숫자판을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안타까워하며 보냈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는 얼굴이 파리하게 굳어 밥먹을 기운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인정사정없이 지났고 마침내 내일 모레가 개학이다.


이튿날 할머니가 신작로까지 나와 사촌동생 민숙이와 나를 버스에 태웠다. 운전석 옆  앞자리였다. 민숙이는 서산에서 내리고 나는 면 소재지까지 삼십 분쯤 더 간 다음 거기서 내려 이십 분가량 또 걸어가야 한다.
할머니가 포도 한 송이를 신문지에 싸 왔다. “어여, 먹어.”
포도를 내 품에 안기고는 그냥 내려가신다. 이제 진짜 작별이다. 포도를 먹는 내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사촌 오빠의 우는 모습을 보고 민숙이도 따라 울었다. 눈물 자국이 신문지에 번졌다. 저만치에서 모르는 척 손 흔들며 돌아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참으면서 포도를 먹으려고 했다. 차마 우는 표정을 보일 자신이 없었다. 백미러를 보며 새빨간 눈동자로 우는 표정을 바꾸려고 일부러 씨익 웃어도 보았다.

 

그러나 운전수가 시동을 거는 순간. “할머니이이.
나도 모르게 후아아앙 울면서 뛰어 내렸다. 민숙이도 차가 출발하기 직전 뛰어내렸다. 
“할머니이….”
두 아이가 동시에 기어가다시피 달려가 할머니를 불렀다. 처음에는 못 들었는지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할머니이!” 
세 번째 불렀을 때서야 할머니가 깜짝 놀라 돌아섰다. 그리고 잠깐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손주들을 향해 달려왔다. 민숙이와 손을 잡고 뛰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죽어도 놓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흙 냄새가 따뜻하게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래, 할미랑 느이 집에 가자.”
할머니도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그렇게 갑자기 끌려오셔서 우리 집에서 몇 년 더 머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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