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장작가마 불꽃 속에 핀 도공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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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장작가마 불꽃 속에 핀 도공의 열정
  • 이성재기자
  • 승인 2016.06.30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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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시작 40년 간 전통 잇는 외길 인생
인간문화재 ‘문경요’ 천한봉 선생에게 배워
일본 교토, 미국 뉴욕 등 해외 전시회 개최

도공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흙을 반죽하고 성형하여 조각한 뒤, 다시 건조하고 소성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과정이다. 작품을 1300℃ 장작 가마에 넣어 사흘 밤낮을 불을 때며 이숙인씨의 도자기 작품들. 겪는 창작의 고통은 다반사다. 이런 고통을 감내하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도자기를 굽는 ‘옥천요’ 이숙인(68) 씨를 만나 그의 도자기 인생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군북면 ‘옥천요’ 이숙인(68)씨.

최근 우리사회는 ‘명품’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흔히들 명품을 ‘비싼 물건’이라 취급하지만 명품의 진정한 의미는 단어 그대로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이나 작품’을 말한다. 장인 정신과 최고 기술이 만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인정받은 명품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런 면에서 장인들의 수작업과 뛰어난 기술력, 소량 생산이라는 명품의 철학은 우리 도예와 많이 닮아 있다. 세월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듯이 도자기의 용도도 변했지만 고집스럽게 도자기에 혼을 불어넣는 장인의 정신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흙과 물을 이용해 빚어내고 불로써 단단하게 구워진 도자기는 장인정신의 다른 모습이다. 장인의 고집과 자연의 재료로 빚어낸 도자기는 선조들의 실생활에 꼭 필요한 그릇이었다. 그렇게 우리 선조들은 도자기와 함께 살아왔다.

취미로 시작한 도공의 길 지금까지 이어져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 낮은 산 아래 옥천요를 운영하는 이숙인(68)씨는 전통 장작 가마로 도자기를 굽고 있는 여성 도예가다. 전통 가마만을 고집하는 이 씨는 몇날 며칠씩 나무에 불을 지펴 작품 만들기에 구슬땀을 흘린다.

이 씨가 다완(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사발), 다기, 식기 등 다양한 도자기를 빚은지도 어느새 40년이 넘어가고 있다. 20대 후반 한국전통 도예분야 명장이자 인간문화재인 ‘문경요’의 천한봉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는 “취미로 시작한 도공의 길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그 매력에 푹 빠졌다”며 “도자기를 빚는 동안 강산이 벌써 네 번이나 변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숙인씨의 도자기 작품들.

이 씨가 도자기를 만드는 방식은 옛것 그대로다. 하나의 도자기가 완성되기까지 수십 차례의 정성스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경남 산청과 충남 태안 등지에서 흙을 직접 공수해 작업장에서 톳물을 받는다. 물에 잘게 빻은 흙을 넣고 저어서 침전된 고운 입자만 사용하는 작업이다.

다음으로 반죽된 흙을 물레에 놓고 성형하는 것부터 바닥 지지대를 만드는 굽깎기, 초벌구이, 문양 넣기, 유약 바르기, 재벌구이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단계는 없다.땔감 역시 옛 방식대로 소나무만 사용하고 있다. 소나무 중에서도 조선송을 고집한다. 나무 자체가 연하고 송진도 많아 불 온도가 빠르게 오를 뿐만 아니라 재는 빨리 가라앉아 가마 내부에 산소 공급이 잘 되기 때문이다.

전통장작가마의 모습.

전통장작가마 온도·바람 등 외부조건에 민감
대부분 사람들은 도자기는 도공의 손에 의해 빚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흙을 반죽하고 유약을 바르고, 문양을 새기는 것은 도공의 몫이지만 1300℃를 넘나드는 가마에 들어간 도자기가 불속에서 각기 다른 상황과 변수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 씨는 단지 기다릴 뿐이다.

언뜻 보기에는 모양이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제각각 그 특성과 아름다운 빛깔을 간직하고 있다. 최고의 흙으로 빚고 혼을 담은 노력으로 만들어낸 도자기는 화려함이 아닌 단아함으로, 복잡함이 아닌 단순함으로 재탄생을 한다.

이 씨는 자기를 빚으면서 겸손함을 배웠다고 한다. 흙으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어느 정도 구현해 내지만 결국 도자기를 제대로 완성시키는 불속의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힘으로 제어하기 힘든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결국 좋은 작품은 도공의 노력과 자연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씨는 “작품을 빚어 3개의 가마에 차곡차곡 넣은 뒤 800℃에서 초벌구이를 하고 식혀서 유약을 발라 1300℃로 재벌구이를 한다”며 “불을 지필 때면 한시도 자리를 뜨지 못해 고되지만 여러 색채를 띠는 도자기가 가마에서 나올 때면 항상 경이로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40여 년 동안 도자기를 빚어온 그에게도 전통 장작 가마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화력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가스나 전기 가마와는 달리 온도, 바람 등 외부조건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불의 세기와 불을 받는 위치에 따라서도 가지각색의 도자기들이 탄생한다.

그는 “전기 가마나 가스 가마는 열이면 열 모두 비슷한 작품이 나오지만 장작을 지피는 장작 가마는 도자기에 직접 닿는 불의 온도에 따라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며 “사람의 손을 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기묘한 색깔과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게 장작 가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숙인씨의 도자기 작품들.

감상용보다 실용적인 생활용기 제작에 집중
이숙인 씨의 도자기들 가운데는 감상용 도예품보다는 실용적인 생활 용기가 많다. 생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전시장 속 유리 안에 갇혀 감상용에만 머무르는 예술을 벗어나 생활 속에서 서민과 함께 숨 쉬며 같은 공간 안에서 교류하는 예술을 지향한다. 예술이란 우리 ‘현실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생활 속에서 구현돼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고귀하게 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는 “흔히들 도자기 그릇이라고 하면 비싸고, 깨지기 쉽고, 다루기 힘들어 가까이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릇은 차·음식 등을 담기 위해 존재한다”며 “삶 속에서 함께하지 못하면 도자기는 제역할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어미는 오랜 산고를 겪고 낳은 새끼를 위해 온 사랑을 준다. 이 씨에게는 도자기가 그런 존재이다.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잘 나왔던 못 나왔던 그의 새끼들이다. 어미와 같은 애착으로 만들어 낸 작품은 그에게 소중하다. 그는 작품을 만들 때 세상일에도 무관심해지고 오로지 작품만을 생각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도자기이니 어찌 나온들 애착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씨는 “도자기를 빚는 창작의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제 모습을 갖추고 가마 안에서 나오는 작품들을 보면 흐뭇하기 그지없다”며 “가마 안에서 깨지거나 변형이 생겨 일그러진 도자기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표현했다.

이숙인씨의 도자기 작품들.

중국산이나 외국 수입산 등에 밀려 설 자리 잃어
이숙인 씨는 거의 해마다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 예술의전당, 통인화랑, 미국 뉴저지, 뉴욕, 일본 교토, 중국 경덕진 등 국내외 가리지 않고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했다. 지금도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 씨는 “과거에 도자기는 예술성만을 고집하는 흐름이었다”며 “이제는 전문성과 상품성을 갖춰 국내 및 해외로 진출해야 선조의 혼과 얼이 깃든 명품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우리나라도 도자기를 구매하고 실생활에 사용하거나 감상할 줄 아는 소비층이 형성되기를 바란다. 작업장에서 가마를 여는 날 찾아와 가마에서 도자기를 꺼내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구입해 가기도 하지만 그런 정도로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또 외국의 명품도자기만을 최고로 여기는 풍조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것에 대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외국 것에 대한 지향이 그를 힘 빠지게 한다.

이 씨는 “선조의 장인정신의 맥을 잇는 도자기는 장인이 혼신을 다해야 비로소 눈에 차는 명품이 나온다”며 “이렇게 힘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도자기를 만들어도 중국산이나 외국 수입산 등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아들도 대를 이어 도자기 빚어내 삶에 도자기가 없었다면 의미 없는 삶이었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이씨는 “내가 죽어서 없어져도 내가 만든 도자기는 오래도록 사람들과 마주하며 대화를 하고 평가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며 “도자기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숨결과 혼이 담겨져 있는 색깔 있는 도자기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숙인씨의 도자기 작품들.

스승 천한봉 선생한테 도자기를 배운 그는 흙을 만질 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했다. 아마 스승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씨는 “화가 나거나 마음이 심란한 상태에서 그릇을 빚으면 그 마음이 그릇을 접하는 손님에게 전달될 수 있다”며 “늘 겸손한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는다”고 설명했다.

이숙인 씨의 아들인 최석호(44)씨도 2년간의 일본 유학을 마치고 어머니의 업을 이어 도자기를 빚고 있다. 그런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항상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노력하고 창작하는 도예가, 전통을 지키고 느림과 기다림을 배우고 전통 장작 가마의 우수성을 알리며 삶에 유용한 도자기를 만들라고 늘 격려한다.쉽고 간편한 방법도 알고 있지만 도자기 최고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손끝과 마음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굳은 신념으로 빚은 도자기에 한국전통의 혼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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