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인간이 되어 가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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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인간이 되어 가는거니?”
  • 박근석 시인
  • 승인 2020.12.31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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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빵빵 주머니도 두둑, 겨울 햇살 따라 기분전환이나 할까? 한 달 넘게 주머니에서 숨을 죽이는 만 원짜리 몇 장이 몸부림을 친다. 오십 대 후반 배짱과 유사한 느긋함. 
‘아! 뱃속 편하다.’


유튜브 채널 대금으로 듣는 목포의 눈물에 두 발이 묶여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휴대전화 액정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남들보다 수십 배 양껏 누리라 그동안 마음에 고단을 주신 걸까?
‘지랄! 누가 들으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빠지는 소리 한다고 하겠네!’ 불과 얼마 전까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아무것도 아닌 일에 하루하루가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았다. 돈만 있으면 사는 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줄, 욕심을 부리면 다 내 것이 되는 줄, 찬찬히 오늘을 후 집어 팠다. 전과 뭐가 다른 거지? 뭐가 틀렸던 거였지? 얼핏 생각하니 내 사는 방식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뭐가 그대로냐! 내숭 떨고 있네. 채우고도 씁쓸하여 울부짖었던 그때와는 마음 씀이 하늘과 땅이야!'


 희로애락으로 성숙한 지금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구색을 갖춰야 잘사는 것으로 알았다. 차고 넘쳐도 성에 차지 않았기에 매서운 눈초리로 남편을 닦달했다. 지금과 다르게 내 눈초리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비축해야 할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발산하는 남편을 왜 그렇게 미워했던지. 


남편도 나만큼 기력이 떨어졌을까? 그렇게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밖을 나가더니 이제는 나만 찾는다. 알면서도 적당히 당해 주고 적당히 속아 준 것이 먹혔나? 그게 아니면 내 것으로 흡수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 나를 치장한 삶이 매력 있어 보이나?


 ‘아~~악!’ 행복한 비명이다. 남편은 밥상머리에서 직장에서 있었던 사소함까지 넋두리하듯 한다.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기에 푸념에 제스처로 장단을 맞추고 쌍욕으로 추임새까지 넣는다. 


사실 어떨 때는 반복하는 이야깃거리가 지루해 벌서는 것 같지만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을 보면 투덜댈 수 없다. 남편 직장 사람들 얼굴은 몰라도 성향을 꿰고 있는 나. 그 대가인지 남편은 크건 작건 가리지 않고 내 주머니에 채워 주고 싶어 한다. 하나 담으면 두 개를 담지 못해 안달 냈던 시절보다 더. 


어제보다 부족한 게 없는 오늘, 작년에 아들도 장가가고 딸도 경제적으로 독립한 지 한참 됐다. 바랄 게 뭐 있으리 하면서도 타고 남은 어쩔 수 없나? 문득문득 의식적으로 비우려는 마음 씀에 눌려있던 물욕이 꼬물꼬물 기어 나온다. 


지난 늦가을의 일이다.
남편 고향 친구가 밭에서 고구마를 캐가랬다. 직장 일로 시간 못 낼 남편 대신으로 나라도 가서 캐 와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시절 수확 과정의 경험으로 혼자는 엄두도 못 낼 일의 강도를, 고랑마다 흙과 한 몸이 된 고구마 덩굴과 비닐을 걷어야 하고 땅속에서 자리 잡은 고구마를 기력을 다해 호미로 캐야 한다. 


그리고 흙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자루에 담아야 한다. 그러나 3년간 먹어온 폭신한 고구마 맛, 그 맛을 알기에 며칠 끙끙 까지는 아니어도 속앓이를 했다. 지금 우리 창고에는 5일장에서 사다 놓은 고구마가 한 상자 있다. 그런데도 아직 습관적으로 캐오지 못한 밤고구마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신다. 


 명상 자세로 지그시 눈을 감는다. 후회로 뒤가 무거운, 누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감추고 싶지 않은, 어제와 오늘을 돌아본다. 전 같으면 그럴싸하게 포장하다 안 되면 꾹꾹 눌러 감추려 급급했지, 절대 끄집어내지 않았을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다니. 
 내게 묻는다. ‘너, 인간이 돼가는 거니? 푼수가 돼가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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