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우리 이장님] “도우며 사는게 사람 사는것이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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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 우리 이장님] “도우며 사는게 사람 사는것이지유”
  • 김병학기자
  • 승인 2021.02.18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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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성락호 이장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성 이장은 “도울 수만 있다면 서로 돕고 사는게 진정한 삶”이라고 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성 이장은 “도울 수만 있다면 서로 돕고 사는게 진정한 삶”이라고 했다.

 

‘사단골’ ‘오룡골’ ‘백읍(흔읍)’ 등 3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진 옥천읍 이원면 백지리(白池里).

이원면 남동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2.77㎢에 84가구 153명이 살아가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옥천의 특산품인 포도와 복숭아를 재배하고 있다.

일부 농가는 사과와 배도 재배한다.

올해 팔순에 접어든 성락호 이장.

성 이장은 옥천군 224개 리 이장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 이장’이다. 언뜻 생각하면 그 나이에 뭘 하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건 큰 오해다.

젊은이 못지 않은 힘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오히려 젊은이들을 기죽게 만들 정도다.

그런 그를 설을 며칠 남겨둔 지난 3일 오후 그의 집에서 만났다.

성 이장은 직접 차를 몰고 나타났다.

“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떡을 좀 나눠 주라고 해서 나눠주다 보니 조금 늦었습니다”라며 미안해 했다.

성 이장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잡다한 공문들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주민들에게 알려야 할 공지사항들이라고 했다.

성 이장이 직접 마을방송도 한다고 했다.

“(이장을 맡은지) 올해로 9년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라는 성 이장은 올해 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했다.

“80넘도록 이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더욱이 지금 시대는 가능한 젊은 사람들이 이장을 맡아야 마을이 발전하고 활기도 넘치게 됩니다”라고 이유를 댔다.

지난 세월 성 이장은 마을 발전을 위해 쉼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에서도 마을 입구 도로 직선화 공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마을 입구에서 마을안까지 들어오려면 지나치리만치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로 인해 같이 사는 주민들조차 불편이 컸다.

그런 도로를 성 이장이 앞장서 해결해 냈다.

옥천군으로부터 5억원의 사업비를 타내 구불구불한 도로를 일자로 펴버린 것.

이를 본 주민들은 너무도 좋아했다.

“역시 성 이장님이 최고네유”라고 비행기를 태웠다.

미국땅 바라보며 절하기도

하지만, 도로를 확포장하는 과정에서 성 이장의 마음고생도 컸다.

도로 대부분이 원주민이 아닌 외지인들이 소유주로 되어 있어 한달 이상 공사를 중단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미국에 사는 토지 소유주와의 연락이 되질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전북 군산에 토지 소유자의 동생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연락을 취해 가까스로 토지사용 승낙을 받아냈다.

다행히 토지 소유자가 흔쾌히 승낙을 해줘 무사히 도로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때 성 이장은 해당 토지 소유주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워 마음 속으로 미국땅을 바라보며 절까지 했다고 했다.

이외에도 성 이장은 마을 하천정비와 마을안길 포장, 배수로 정비 등 마을 주민들이 살아가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꼼꼼이 챙겼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날인가 주민 한 사람이 장애 아들을 둔 노모가 산 언저리에 컨테이너를 놓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도 힘들게 살고 있어 자기 마음이 아프다며 마을에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접 찾아가 봤다.

주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당시 장애 아들은 무려 120kg이 넘는 거구여서인지 단 한발짝도 자신의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었다.

오로지 노모의 도움으로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었다.

이후 성 이장은 이러한 사실을 면사무소에 알리고 즉각 영세민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 종편에서 이들 생활상을 방송에 내보내 모금운동을 펴준 결과 컨테이너가 아닌 마을 공터에 에어컨과 온풍시설을 갖춘 제대로 된 집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 장애 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 이장은 몇날 며칠을 마음이 아팠다고도 했다.

“사람이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도울 수만 있으면 돕고 사는게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자신만 생각한다면 그건 진정한 삶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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