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농 위의 소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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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농 위의 소쿠리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21.02.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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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번 돌아오는 휴일에 맞이하는 장날이다.

구정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모처럼 만에 장 구경이나 해야겠다 생각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무엇을 살까 딱히 정해놓은 것은 없다.

혹시나 굴비 20마리에 만원 하고 외치면서 지나가는 트럭을 만나면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살짝 작은 눈발이 오다가 말다가 하는 심란한 날씨다.

몸도 마음도 움츠려 드는 느낌이다.

나는 차가운 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다.

백화점에서 여유롭게 쇼핑하는 것처럼 이쪽저쪽을 보면서 걸었다.

장이 서는 뚝방길은 명절이 아니어도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서 다닐 만큼 부산한 거리다.

오늘 걷는 이 뚝방길은 명절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코로나 후유증에 마음이 텅텅 비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괜스레 걱정이 앞선다.

5일장이 두 번 더 열리면 설날이 된다.

장날엔 발 디딜 틈없이 화려한 잔치가 벌어졌으면 좋겠다.

시끌벅적 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장 구경하는 재미가 없어졌다.

굴비 파는 트럭도 만나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는 너무 섭섭하다.

구경꾼이 없는 얼음 동산에서 동태 두 마리만 사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장 봐온 물건을 주방에 휙 던져놓고 내 방으로 들어와 벌러덩 누웠다.

우두커니 천장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이제는 신나는 명절도 사라져 가는가 보다.

세월 따라 서서히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찹찹해진다.

“순덕이 엄마 떡 했어? 아니 내가 열번째여 언제 될랑가 몰라, 시방 사람들이 겁나게 줄을 서 있당께”

떡 방앗간엔 길다란 가래떡이 쉬지 않고 나오고 있다.

길이를 맞추어 가위로 싹둑 싹둑 자르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떡이 나오는 것만 보아도 신기하고 좋았다.

어린 시절의 설 풍경이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내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내 눈은 어느새 천장을 거슬러 장농이 우뚝 서 있는 곳에 머물렀다.

장농 위에 바구니 하나가 보인다.

무엇이 들었을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바구니가 점점 흐릿하게 소쿠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주 멀리 있는 해 맑은 내 얼굴도 보인다.

저 소쿠리 속에 맛있는 음식이 가득 들어 있을까?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은 시절 엄마는 마루 양쪽 기둥에 못을 박아 철사 줄을 단단하게 매어 놓았다.

그리고 삶은 보리쌀을 소쿠리에 담아 삼베보자기를 덮어 그 줄에 매달아 놓는다.

용도를 아주 다양하게 사용한다.

감나무 가지를 걸쳐 놓기도 하고 가죽나물에 고추장과 풀을 발라 매달아 놓기도 했다.

뛰어놀다가 배고프면 하나씩 걷어 먹은 적도 많았다.

눈이 오는 날엔 그곳에 빨래를 널어 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빨래는 차가운 바람에 꽁꽁 언 동태로 변하곤 했다.

시커먼 마루와 기둥 철사 줄이 모두 쥐들의 놀이 공원이기도 하다.

부스럭 덜컹덜컹 찍찍 추운 겨울밤에 들려오는 쥐들의 합창 소리를 밤새워 듣곤했다.

설날이 돌아오면 엄마는 항상 가래떡 한말을 뽑아 소쿠리에 담아 장농 위에 올려놓는다.

안전한 그곳에 올려놓고 떡을 썰기에 좋을 만큼 굳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부엌이나 마루에 놓으면 우리 4남매가 설전에 모두 먹어 치울까봐서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장농 위에 있는 떡이 먹고 싶어 고개가 아프도록 쳐다보았다.

잠을 잘 때도 이불속에서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떡은 그대로 있는지 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쌀밥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때라서 가래떡은 최고의 음식이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장사를 나간 사이에 오빠가 먼저 베개 하나를 놓고 올라섰다.

덜렁덜렁 소쿠리가 앞뒤로 흔들거린다.

까치발을 들고 간신히 손울 넣어 가래떡 한 줄을 꺼내면 얼마나 신이 났는지 잽싸게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 다음은 내 차례다.

나는 키가 작아서 베개 하나로는 어림도 없다.

베개 다섯 개를 포개고 올라섰다가 주르르 미끄러지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나는 또다시 농짝 문을 잡고 오르니 다리와 베개가 버둥 거렸다.

간신히 성공해 떡을 꺼내는 순간 나는 뒤로 넘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떡가래 하나는 내 손에 잡혀있었다. 몰래 먹는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떡을 썰기 위해 장농 위에 있는 소쿠리를 들다가 기절초풍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렸다.

떡가래가 대 여섯 개 정도 남아있었다.

삼사일 동안 계속 베개를 밟고 꺼내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엄마의 고함소리에 나는 주눅이 들어 걸음을 제대로 걷질 못했다.

명절이 가까이 걸어오니 엄마의 고함소리가 그리움으로 내 가슴속을 울린다.

오늘은 유난히 그 떡이 먹고 싶다.

아직도 장농 위에 있는 소쿠리 속에 가래떡은 남아있는지 궁금하다.

많이 힘들고 지쳐 있을 때 맞이하는 명절이다.

배려와 응원으로 어려움을 이겨내 보자 세상의 모든 해답은 사랑이라는 것, 믿음 사랑 소망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을 더 깊이 새겨야겠다.

어느새 어둠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그 속에 가족들의 추억과 내 추억이 하나둘 함께 떨어져 내린다.

추운 겨울밤은 또 그렇게 멀리 있는 별들과 함께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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