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와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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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와 손해배상
  • 김용현 법학박사, 시인
  • 승인 2021.02.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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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식

마을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도로교통법 상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건너는 사람이 운행하는 차보다 우선인데, 술 취한 운전사가 과속으로 모는 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네사람을 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어 46일 만에 깨어났는데 기억은 눈 온 들판에 철새 발자국처럼 희미하더란다.

당연히 가해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등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형량 때문에 피해자와의 합의가 꼭 필요하단다.

그래서 가해자는 피해자와의 합의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막 깨어난 피해자더러 합의하자면서 합의서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으란다.

아니면 이름만이라도 쓰란다.

동네 사람은 정신도 없는 상태에서 가해자가 구해 미리 써 온 양식에 그냥 이름만 썼단다.

그런데 문방구에서 구할 수 있는 이 ‘합의서’라는 것은 합의내용 등을 인쇄한 용지, 즉 부동문자로 민·형사간의 모든 합의를 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에 이름을 쓴 행위의 효력여부나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의 합의한 것이 불공정한 의사표시나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로써 무효이거나 취소를 할 수 있는가도 문제가 된다.

민법은 최고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인격을 기본으로 근대 민법의 대원칙인 계약자유의 원칙과 개인의 일은 개인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는 사적자치의 원칙 아래서 모든 사람은 법률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명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민·형사간의 모든 합의’를 했으니 가해자로서는 형사에서 감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책임까지 면제되었고 피해자로서는 가해자에게 더 이상 민사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게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어이 할꼬?

우리「민법」제750조 이하에서는 거의 모든 손해에 관하여 그 책임관계 요건을 법정하고 있다.

즉 가해행위가 있어야 하고, 그 행위가 불법해야 하며, 그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해야 하고,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므로 교통사고 피해자는 당연히 그 손해의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이지만 교통사고는 늘 날 수 있고 이에 대하여 배상할 것을 예상하여 거의 모든 차량운전자는 강제적으로 책임보험이나 임의적으로 종합보험을 거의 가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 치료가 일시적이지 않거나 장애가 계속 되고 있는 때, 가해자가 가입한 보험기간이 만료되면 어찌 될까?

「민법」제168조가 소멸시효의 중단사유로 ①청구, ②압류 또는 가압류·가처분, ③승인을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178조 제1항에서 중단 후의 시효진행에 관하여 시효가 중단된 때에는 중단까지 경과한 시효기간은 이를 산입하지 아니하고 중단사유가 종료된 때로부터 새로이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보험의 배상관계가 중단된 뒤에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가가 의문이 되는 것이다.

민사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과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기간 중 먼저 만료되는 것에 의하여 권리가 시효로 소멸 되는데(민법 제766조),「상법」제724조 제2항에서 제3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입은 손해에 대하여 보험금액의 한도 내에서 보험자에게 직접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러한 직접청구권은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한 것이므로 직접청구권의 소멸시효도 피해자가 피보험자(가해자)에 대하여 가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민법 제766조가 적용된다 할 것이므로(대법원 2005. 10. 7. 선고 2003다6774 판결) 치료는 계속 받을 수 있고 보험금도 계속 지급될 것이라 사료된다.

특히 대법원은 소멸시효중단사유로서의 승인은 시효이익을 받을 당사자인 채무자가 소멸시효완성으로 권리를 상실하게 될 자, 또는 그 대리인에 대하여 그 권리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하는데, 그 표시방법은 아무런 형식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또한 명시적이건 묵시적이건 불문하며 묵시적인 승인의 표시는 채무자가 그 채무의 존재 및 액수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표시를 대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채무자가 그 채무를 인식하고 있음을 그 표시를 통해 추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행해지면 된다고 판시하였다.

또,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완성 전에 가해자의 보험자가 피해자의 치료비를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규정에 따라 의료기관에 직접 지급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험자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있음을 전제로 그 손해배상채무 전체를 승인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치료비와 같은 적극적인 손해에 한정하여 채무를 승인할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한 판례도 있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다99105 판결).

더구나 불법행위 당시에는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손해가 발생하거나 손해가 확대되는 경우 그 부분에 대한 소멸시효기산점에 관한 판례를 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도 소멸되는 것인데, 여기에서 ‘손해를 안 날’이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뜻하고, 손해발생의 추정이나 의문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통상의 경우 상해의 피해자는 상해를 입었을 때 그 손해를 알았다고 볼 수가 있지만 그 후 후유증 등으로 인하여 불법행위 당시에는 전혀 예결할 수 없었던 새로운 손해가 발생하였다거나 예상 외로 손해가 확대된 경우에는 그러한 사유가 판명된 때로부터 새로이 발생 또는 확대된 손해를 알았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새로이 발생 또는 확대된 손해부분에 대하여는 그러한 사유가 판명된 때로부터 시효소멸기간이 진행된다고 하였으며(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다99105 판결),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에 기초한 손해배상채권의 경우, 소멸시효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는 단지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손해가 그 후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때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대법원 2007. 11. 16. 선고 2005다55312 판결).

몽롱한 상태에서의 합의는 착오로 인한 법률행위

마을사람의 교통사고에 대하여 당시 및 직후에 치료하는 것 등에 대한 배상은 물론 그 치료가 계속 되는 한 시효는 중단되지 아니하며 또한 교통사고 당시나 치료 중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해가 발생한 때에는 그에 대하여 새로이 치료를 할 수 있고 그 때부터 시효가 진행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더구나 막 정신이 든 몽롱한 상태에서 민․형사간에 합의를 했다 하더라도 이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한, 즉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한 불공정한 법률행위로써 무효이거나 착오로 인한 법률행위이기 때문에 취소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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