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손수 농기계 제작… 발명에 푹 빠진 이색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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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손수 농기계 제작… 발명에 푹 빠진 이색 농부
  • 이성재기자
  • 승인 2016.07.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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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속 설계도 없이 기계 만드는 능력 ‘탁월’
기계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혼자 힘으로 공부
콤바인 재활용 소형 굴삭기 등 대략 50여 종 발명

‘고집쟁이’는 일반적으로 주위의 변화에 순응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대로만 살아간다는 의미로 보면 부정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외부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을 표현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의 농사를 위해 농기계를 발명하기 시작해 농사와 더불어 평생의 업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노완수(53)씨를 만나 그의 발명에 관한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청성면 농부발명가 노완수(53)씨.

노완수(53)씨는 굳이 설계도를 그리지 않아도 마음먹은 대로 뚝딱 발명품을 완성해내는 귀신같은 재주가 있다. 기계를 만들 생각을 가지면 머릿속에 설계도가 그려진다는 그에게 기계를 다루고 만지는데 천부적인 재주가 있어 보인다. 어릴 적 공부하기가 싫어 시험을 보러 가다가도 되돌아왔던 그이지만 독학으로 발명가가 됐다. 젊은 시절, 큰돈을 벌겠다며 구미·대구 등 도시로 나가 이일저일 해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는 고향만큼 푸근한 곳을 찾을 수 없어 되돌아왔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았던 완수 씨는 열악한 농촌 현실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발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직접 사용하기에 적합한 농기계만들 결심

고향인 옥천군 청성면 능월리로 돌아온 그는 처음으로 콩·깨 등 잡곡농사를 조금씩 짓기 시작했지만 경험이 없어 잦은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렇게 실패를 통해 농사에 대한 노하우도 조금씩 깨우쳐가면서 정신적 여유가 생긴 그는 조금 더 수월하게 농사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매일 고심하게 된다. 그러다 평소 불편했던 농지에 물대는 작업, 제초 작업 등에 필요한 농기계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속에 그는 제법 농기계라부를 수 있는 기계와 도구 등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농기계나 농업에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 당시 본업인 농사보다 더 치중하게 되면서 아내 박영옥(49)씨와 사소한 갈등은 있었지만 그런 아내를 위해 틈틈이 농사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농사일에 도움이 되는 농기계를 만드는데도 열중하게 된다.

노 씨는 “처음엔 필요로 하는 작업을 대체해 줄 농기계를 찾기 어려웠고 내가 짓는 농사에 딱 들어맞는 제품이 없었다”며 “이럴 바엔 아예 내가 사용하기에 적합한 농기계를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에 그의 아내 박영옥씨는 “농사일에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데 기계 만드는 일에 너무 빠져 있어 섭섭할 때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남달리 좋은 남편의 손재주를 썩히는 것 같아 당분간만 지켜본게 여기까지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하수 파는 기계.

농사일 접어두고 지하수 파는 일 시작

노완수씨는 한참 농기계 발명에 대한 의욕과 관심으로 여러 기계들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혼자의 힘으로 기계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히 고물상이나 폐차장을 들락거리면서 중고부품을 구입해 농기계를 만들고 분해하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그가 만든 농기계는 그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가 실패를 거듭하면서 처음으로 완성한 농기계는 ‘소규모 지하수 파는 기계’로 두달에 걸쳐 만들게 된다. 그는 뜻하지 않게 지하수 파는 기계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본업인 농사일을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만든 기계가 주위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지하수를 파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하게 된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분간 농사일을 접어두고 옥천·보은 등의 지역에서 벌이가 괜찮은 지하수 파는 작업을 하게 된다. 당시 그 일대에 소규모로 지하수를 파는 기계는 그의 것이 유일해 하루에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지하수를 파게 된다. 과수원 물대기용, 식수용, 농업용 등 수요가 많아 수입이 날로 늘어나게 된다.

노 씨는 “당시에 기존 상품은 있었지만 성능이 그리 좋지 않아 농업인들이 기계를 구입하고도 유용하게 써 먹지 못했다”며 “수년간을 연구하고 공들여 발명한 기계로 지하수를 파면서 보람도 느끼고 돈도 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큰 어려움 없이 4남매도 듬직하게 키워냈고 생활도 그리 쪼들리지 않게 해준 것이 처음 발명한 지하수 파는 기계로 고마움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콤바인을 재활용한 소형굴삭기.

다시 농사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농기계 제작

노 씨의 사업이라면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지하수 파는 일이 오랜 기간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고 2000년대에 들어서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고 경지정리가 되면서 지하수 파는 일은 하향세에 접어들게 된다. 소규모로 지하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대규모 저수지가 생기면서 그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 때 그는 지하수 파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히 다시 농사일을 시작하게 된다. 아내와 상의해 구매한 땅에서 복숭아, 사과 등의 과일과 고추, 콩, 들깨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게 된다. 그는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더 다양하고 많은 기계를 발명하게 된다. 들깨를 터는 기계, 자동유압 도끼, 콤바인을 재활용한 초소형 굴삭기, 운동기구를 재활용해 만든 들깨 분류 기계 등 그가 만든 대부분의 기계는 농사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콤바인 궤도를 활용해 만든 제초기 겸 과일 운반차량은 활용할 수 있는 용도가 많아 그가 농사일에 자주 사용하는 기계다.

노 씨는 “발명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고 농사일이나 일상생활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발명의 소재가 되고 아이디어가 된다”며 “농업에 필요한 농기계를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계를 제작한다”고 말했다.

 

이동식 제초기 겸 과일운반차.

방송에 소개되면서 전국에서 찾아와

농부발명가로 입소문이 나면서 그동안 방송과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돼 방송을 보고 사람들이 찾아와 농기계와 농사도구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끊이질 않았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서운하게 돌아가게 할 수 없어 몇몇 농사도구는 만들어 주고 기계를 제작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노 씨는 현재까지 지하수 파는 기계, 유압식 합판·목재 절단기 등 대략 50여 종의 크고 작은 농기계와 농사도구를 발명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농기계 제작에 들어가는 시기는 농한기인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규모가 있고 복잡한 기계를 주로 만들며 농사일이 한창일 때는 틈틈이 작은 농사도구나 간단한 기계를 만든다. 농기계를 제작하는 기간은 1~2개월 정도로 농기계 1대당 200만원에서 800만원의 자금이 들어갔다. 일부 농기계는 완성된 기성제품보다 자금이 더 투입됐지만, 그는 돈보다 본인이 사용할 때 편할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게 생각한다.

노 씨는 “직접 제작해 쓰는 농기계의 가장 큰 장점은 고장이 나도 농기계수리센터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내가 만든 기계를 남보다 내가 더 잘 아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기계를 손보는 일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비싼 돈 주고 구입한 농기계가 제 구실을 못해 화가 날 일도 없고 수리비도 들지 않는 것도 좋은 점 중에 하나”라고 덧붙였다.

소독차 겸 제초기.

요즘 우리는 한 가지 일에 온 열정을 쏟으며 정상에 오른 사람을 ‘장인’이나 ‘달인’이라고 부른다. 농사일을 쉽고 편하게 하기 위해 25년의 세월을 노력하고 연구한 노완수씨에게 장인이라 칭하는 것은 전혀 어색함이 없다. 더구나 그는 스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교육도 받지 않고 오로지 본인의 노력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농기계를 만들었다. 그가 만들어낸 기계는 그 어떤 예술가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에게는 소중한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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