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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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수양’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4.01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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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가 만연하고 물질숭상주의가 횡행하는 오늘날, 인생의 목표를 오로지 ‘돈’에만 두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365일 ‘돈’ ‘돈’ ‘돈’, ‘돈’ 얘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돈 많은 사람이 제일이고 돈 많은 사람의 말이 힘있는 세상이 돼 버렸다.

물론, 돈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요악’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누구나 공감한다.

돈으로 인해 인생이 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 때문에 삶을 망가 뜨리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그러한 예가 다반사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어도 사람의 생명을 늘릴 수 없고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죽은 후에 욕을 먹는다면 그건 제대로 된 삶을 살았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런 사람들은 평소 ‘자기수양’에 부족했음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기수양’이 부족하다 보니 ‘여유’보다는 ‘조급’함이 더 앞선다.

조금도 참지를 못한다.

뜸을 들이지 않고 물만 부어 바로 밥을 먹으려는 심산이다.

씻지도 않은 나물을 그대로 먹으려 한다.

그러다보니 늘 ‘탈’을 달고 산다.

자기 수양에 대해 일찍이 공자는 “좋은 약은 입에 쓰나 질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는 이롭다”고 했다.

2,500년 전부터 이런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모습은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중국 명나라 말기 홍자성(洪自誠)이 지은 어록집 채근담에서도 “급할 때 당황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면 여유 있을 때 정신을 수양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 역시 같은 의미라 하겠다.

특히 채근담에서는 “사소한 일도 빈틈없이 처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도 그릇된 일을 해서는 안되며 실의에 빠졌을 때도 자포자기 해서는 안된다”라며 평소 ‘자기수양’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자기수양’이 잘된 사람은 아무리 급하고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평소 내재된 마음가짐으로 인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무사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자칭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만큼 ‘자기수양’을 하고 있을까.

또, 얼마만큼의 인내심을 가지고 있을까.

미안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찾기란 한강에서 바늘찾기만큼이나 어렵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늘의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가능만 하다면 상대방을 죽이는 것도 서슴치 않고 있다.

그래놓고도 대중 앞에 서면 ‘근엄한 척’ ‘경건한 척’ ‘겸손한 척’, ‘척’ ‘척’ ‘척’에 여념이 없다. 참으로 구역질나는 모습들이다.

우리는 동물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원하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무참히 짓밟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최소한 도덕이라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 지배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돈’과 ‘명예’라는 부질없는 것들에만 목숨을 걸 뿐 길가다 넘어진 사람에게 손길을 내미는 선한 사마리아인과는 거리가 먼 행태들을 보이고 있다.

언제쯤 우리는 진심으로 약자를 대변하고 품어주는 사람들이 지도자로 나서는 그런 시대를 살아볼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날이 오기는 올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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