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13)
상태바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13)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4.08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조에게 올리지 않은 ‘의상16조소’

중국의 발전된 문물과 제도를 견문하고 돌아온 조헌은 조선이 시급하고 절실하게 시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선상8조소’를 올렸으나 선조는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올린 ‘선상8조소’는 시무에 절실한 것이었고 이어서 준비한 ‘의상16조소’는 근본에 관한 것으로 모든 분야에 걸친 개혁적인 주장이었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의상16조소’에 대한 총론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중봉이 올리려던 16조소는 하늘에 닿는 정성, 근본을 생각하는 효도, 능침의 제도, 제사의 예절, 경연의 규례, 조회의 의식, 간언을 듣는 법, 사람을 뽑는 법, 음식의 절제, 국가의 곡식을 알맞게 쓸 것, 생산을 늘릴 것, 사졸의 선발, 조련을 부지런히 할 것, 못된 사람을 내치고 착한 사람을 올려 씀을 밝게 하는 것, 명령을 엄하게 할 것, 끝으로 군상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모범을 보이는 도를 총론했다.”

조헌은 성절사 질정관으로 중국을 사행하는 동안 보고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조선에 적용할 실용적인 제안을 구상하여 내놓았다.

그러나 선조가 자신이 올린 8조소를 받아들이지 않자 “도낏자루는 모나고 도끼의 구멍은 둥글어서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16조소를 올리지 않았다.

의상16조소는 개략 다음과 같은 요지를 담고 있다.

임금 스스로 수양과 반성의 도를 다하여 하늘과 백성을 감동시키는 정성과 더불어 선조에 대한 효를 다하여 백성들의 덕을 도탑게 할 것.

경연의 강의를 독실하게 수강하고 경연 뒤에는 상·하 간에 뜻을 자유롭게 소통하는 기회로 삼을 것과 아침 조회는 정해진 날에 꼭 참석하여 정사를 살피고 상·하간에 자유스러운 언로를 만들 것. 

민폐를 제거하기 위해 바른말을 채택할 것과 듣기 좋은 말보다 귀에 거슬리는 간언을 받아들일 것.

풍속과 절약정신을 위해서 왕릉을 사치하게 하지 말고 이를 수호하는 인력을 줄일 것이며 왕부터 제사를 간소하게 하고 과도한 음식의 소비를 막고 절제와 검약하는 풍속을 진작시킬 것.

인재를 뽑는데 문벌을 논하지 말고 재혼을 허가하여 적극적인 인구의 증가와 생산력의 증대로 민생을 도모할 것과 서얼의 무조건적 등용 불가와 과부의 재가를 막는 제도를 개선할 것.

관리들의 만연된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말단의 하급관리에게도 급여를 지급할 것.

수많은 노비를 줄여 병사로 선발한다면 20년 내에 백만 양병이 가능할 것이며 견고한 성의 수축과 군사조련을 강화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

인사행정 공정성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명령을 엄정하게 하여 민본 정신에 입각하여 임금의 덕을 선양할 것.

조헌은 당시 조선의 문물제도를 중국에 비교하여 실용적인 측면을 수용함으로써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국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상소에는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어느 한 틈도 비어있는 곳이 없다.

16조소는 조선이 이상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근원적인 대책으로 사회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후에 조헌의 ‘의상16조소’와 ‘선상8조소’는 안방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동환봉사로 편찬한다.

이는 북학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박제가(1750~1805년)는『북학의』를 저술하는 동기와 목적이 고운과 중봉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렸을 적에 최치원과 조헌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말채찍을 휘둘러서라도 그분들의 시대를 따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중봉 조헌은 질정관으로 중국에 다녀왔는데 그가 지은『동환봉사』는 아주 정성스럽게 지은 것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 많다. 그는 다른 사람을 보고 자신을 깨우치려 했고 남이 잘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따르려고 하였으니 중국의 제도를 본받아 풍속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압록강 동쪽에서 천여 년 동안 이어온 이 조그만 나라를 변화시켜 문명국에 이르게 하려던 사람은 오직 최치원과 조헌, 이 두 사람 뿐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