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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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뱅뱅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1.04.0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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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간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 있으니 무료하거나 갈 데가 마땅치 않을 때면 종종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 들를 때마다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초등학교 동창이자 함께 자란 이웃 마을 친구다.

친구는 일찍이 같은 마을에 사는 오빠의 친구인, 잘생기고 씩씩한 상남자와 연애를 해서 고향을 떠났다.

남녀가 사귀는 일이 그렇게 큰 죄도 아니건만 아마도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서 떠난 것 같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사느니 아기를 낳았느니, 두 세 사람만 모여도 그 친구를 화제 삼아 하루해가 가는 줄도 모르고 입방아를 찧곤 했다.

70년대 초반, 내가 결혼해 둘째아이를 낳고 친정에 가서야 몇 년 만에 그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크게 배운 것 없이 맨손 들고 나간 객지생활이 많이 힘들었는지, 고향으로 돌아와 금강휴게소 안동네(지우대)에서 식당을 하고 있단다.

일각이 여삼추라 했던가! 반가운 마음에 지체할 겨를도 없이 그 친구를 찾아갔다.

대전에서 금강유원지에 접어들면 좌측으로 보이는 마을이 있다.

원래도 타고난 음식솜씨가 있던 친구는 이 마을 언덕배기의 아담한 가정집에다 식당을 차려놓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동안 사는 것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고향사람들의 시선이 싫었는지, 나를 보고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마치 뭐 하러 왔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멀쑥해진 나는 남편한테 돌아가자고 재촉을 했지만 남편은 기왕 왔으니 점심이나 먹고 가잔다. 서글서글하고 사람 좋기로 소문났던 친구 남편이 점심상을 들고 왔다.

두 집 남자들은 여러 번 만난 사람처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점심상에는 생전 처음 보는 메뉴가 있었다.

프라이팬에다 작은 물고기들을 가지런하고 동그랗게 펼쳐놓고 기름에 바삭하게 튀겼는데, 이것이 뭐냐고 물으니 본인이 금강에서 잡은 피라미로 개발한 새로운 메뉴 ‘도리뱅뱅’이란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한 어조로 목청 돋우어 큰소리치며 먹어보란다.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도리뱅뱅이’는 정말 신기하게도 맛이 좋았다.

그날을 계기로 남편들끼리는 자주 만났고 또 그 뒤로도 ‘도리뱅뱅’이 생각이 나면 가끔 그 친구를 찾아가곤 했다.

얼마 후 다시 식당을 찾았을 때에는 ‘도리뱅뱅’이가 한층 업그레이드돼 있었다.

피라미 위에다 양념 고추장을 발라 얼큰하니 보기에도 좋고 예전에 먹던 것보다 훨씬 맛이 뛰어났다.

‘도리뱅뱅’이가 인기 메뉴가 되어 멀리에서 또는 가까이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친구는 오랫동안 성실하게 장사를 하더니 그곳에다 고래 등 같은 집을 짓고 터줏대감 역할을 하며 당당하게 살았다.

어쩌다 친구들이 찾아가면 반색을 하며 자신의 솜씨를 마음껏 발휘하여 후히 대접했다.

후덕한 친구내외는 일찍 떠날 것을 예견이라도 했는지 60대 초반에 과감하게 장사를 그만두었다.

그 뒤로 동창들과 함께 국내 여행은 물론이고 해외여행도 같이 다니며 인생을 즐기는가 싶더니 60대 후반 어느 날 홀연히 못 올 길을 떠나고 말았다.

비록 친구는 가고 없어도 ‘도리뱅뱅’이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강가나 호숫가의 식당이라면 어디서든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사람들은 누가 개발했는지는 안중에도 없이 게 눈 감추듯이 맛있게 먹는다.

그 사람들에게 ‘도리뱅뱅’이는 내 친구가 원조라고 말해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내심 자랑스러울 뿐이지 옆의 탁자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지는 못했다.

고향에 갈 때마다 친구가 살던 곳에 눈길이 머물며 친구의 잔영들이 어른거린다.

이제는 ‘도리뱅뱅’이를 먹을 때마다 먼저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내 친구가 이 음식의 원조라고 어디를 가든지 목에다 힘주어 자랑한다.

그리운 고향, 보고 싶은 친구여!

옥천의 먹거리 자랑 ‘도리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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