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날’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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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날’에 부쳐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4.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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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 언론 현업을 걸어가는 저널리스트들은 단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경쟁을 넘어 ‘출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 자칫 흐려지기 쉬운 저널리스트로서의 정체성(Identity) 회복과 공론장 활성화라는 언론 본연의 사고를 회복하고 계획하며 행동하면 어떨런지.

중국 춘추시대 말기 사상가이자 철학자로 알려진 노자(B.C. 604~531).

그의 본 성명은 이얼(李珥)이며 자는 담(聃), 일명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고도 불리운다.

노자의 기본 철학사상은 ‘도덕경’(道德經)에서 발견할 수 있다.

중국어로 ‘길’을 뜻하는 도(道)는 노자의 원칙 가운데 몇 가지만 따르면 ‘도’를 발견할 수 있고 그러한 도에 다다른 자는 영원히 행복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무위’란 인위적 조작을 하지 않는 것

도교의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무위(無爲)’이다.

무위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인위적 조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즉 ‘도’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힘을 힘이 아닌 양보로서 극복할 수 있다는 것과도 같다. 성경에서 말하는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종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을 얻어내는 것과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도교적 사고를 바탕에 두고 있는 저널리스트 경우 아마도 그들은 조용한 성격에 은은하고 때로는 신랄한 유머 감각도 겸비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자아성찰과 인간의 내면세계도 중시할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노자가 무조건 흐르는 물과 같은 평화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개인적인 책임 또한 다하라고 가르쳤다.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사상 역시 도교의 가르침과 흡사하다.

도교는 도덕이나 선을 성취하기 위해 인간이 애쓰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행복과 선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찾는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올바른 정신태도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노자는 또 모든 존재가 ‘선’을 ‘선’이라고 여기는 데서 ‘악’이 생겨난다고 했다.

‘선’을 갈망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행위는 결국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함으로서 생기는 ‘좌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노자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기다리고 경청하며 불필요한 노력을 그칠 줄 아는 사람이다.

같은 시대 인물인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도 “모든 것은 변한다.

오늘 좋은 것이 내일은 나쁜 것이 될 수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윤리적인 것이 또 다른 관점에서는 비윤리적인 것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제를 안하는 것

만일 노자가 지금의 시대에도 살아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만 언론을 통제하도록 하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제를 안하는 것”이라 했다.

결론적으로 노자가 생각하는 좋은 저널리스트란 화를 내지 않고 비폭력적이며 변덕스럽지 않다.

또 복수심도 없고 지배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겸손하고 평화로우며 인내심이 많고 매우 조심스럽다.

더욱이 자신을 잘 알기에 자존심이 강하며 뉴스를 조작하지도 않는다.

마치 개울가에 놓인 바위가 물을 대하듯 뉴스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한다.

하지만 지금은 노자가 살던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 부분 상충된다.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 과연 노자와 같은 사고로 저널리스트의 길을 간다는건 어쩌면 영원한 유토피아인지 모른다.

하지만, 주체성과 출혈경쟁에 찌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저널리스트들에게 노자는 주는 교훈은 결코 흘러 들을 것만은 아닌 듯 싶다.

신문없는 정부보다는 정부없는 신문 택하겠다

1896년 4월 7일 서재필 박사가 주축이 되어 창간된 ‘독립신문(獨立新聞)’을 기념하여 1957년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한지 어언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과연, 지난 세월 우리 신문들은 국가발전과 사회안전에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진정 강자에게는 강한 메스를 들이대고 약자에게는 애정어린 눈물을 흘려 보았는지, 혹여 진실을 왜곡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 볼 일이다. 

“신문없는 정부보다는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미국 3대 대통령)의 이 한마디가 새삼 회상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갖는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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