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슬로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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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슬로와 언론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4.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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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전 세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사를 들라면 단연 헝가리 N1TV에 근무하는 페트라 라슬로 기자 관련 뉴스가 아닌가 싶다.

당시 라슬로는 세르비아 접경 지역 임시 난민수용소에서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난민을 취재하던 중 어린 아이를 안고 뛰던 난민 남자의 발을 걷어 쓰러지게 한 후 그걸 계속해서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마치 특종이라도 잡은 것처럼.

이어 쓰러진 남자가 라슬로에게 거센 항의를 했지만 라슬로는 그 장면마저 계속해서 촬영을 했다.

아마도 라슬로는 언론인이 지녀야 할 취재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채 뭐든 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여 그러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기왕 무거운 카메라 들고 취재하러 나온 이상 빈손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라는 ‘특종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라는 얘기다.

그러나 세상에는 비밀이란 없는 법, 이러한 라슬로의 몰상식한 행동이 당시 난민들의 도망치는 모습을 촬영하던 다른 기자의 카메라에 잡혀 그 기자가 트위터에 올리면서 라슬로의 추태가 일파만파로 퍼지게 된 것이다.

자칫, 라슬로의 몰지각한 행동이 다른 기자의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더라면 라슬로는 매우 열정적으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라는 평을 받았을 것이다.

마치 다른 사람은 촬영하지 못한 장면을 자신만이 촬영하기라도 했다는 우쭐함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백번 양보해 생각해도 용서 못해

필자는 올해로 남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겠지만 만 33년을 언론에 종사해 오고 있다.

올챙이(수습기자) 시절에는 윗 사람들의 지시를 따르느라 일부러 가벼운 연출을 하곤 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러하듯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웃게 하거나 있지도 않는 상황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은 기사의 극적효과를 높이기 위한 ‘재롱’쯤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그런데 당시 라슬로가 취한 행동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막장취재였다.

죽느냐 사느냐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넘기기 위해 아들을 품에 품고 달리는 사람을 순전히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발을 걷다니, 어떻게 이런 사람이 기자라고 돌아다니는지 백번 양보해 생각해도 용서가 되질 않는다.

당시 아이를 안고 달리던 남자는 ‘잡히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뛰었는데 라슬로는 오히려 그 남자와 아이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말았다.

어쩌면 즐겼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혹독한 대가 치러

언론이란 본시 약자의 고충을 덜어주고 강자의 부정함을 폭로, 세상을 정의와 공의가 흐르도록 만드는데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약자를 외면하고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면 그건 이미 언론인으로서의 자격을 박탈 당한 것이다.

사람이란 누구나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그곳으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하는게 인지상정이다.

 만일 라슬로가 도망치는 난민의 입장에서 그 남자가 라슬로의 발을 걷어 넘어지게 했다면 그때 라슬로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아마도 죽기살기로 자신을 넘어뜨린 사람을 물고 할퀴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들에게 라슬로가 준 교훈은 매우 강하다.

취재라는 명목 하에 상대방의 입장이야 어떻게 되든 나 몰라라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댄다면 그건 취재가 아니라 ‘살인’이다.

아무리 취재원이 씻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그에게도 인격과 자존심은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만의 말만 듣고 마치 자신이 대단한 힘이라도 있는 양 설치다가는 그 자신도 언젠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게 세상살이의 이치요 순리다.

자질 없는 기자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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