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사람으로 대우받는 세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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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사람으로 대우받는 세상을 기대한다
  • 박재훈 목사(포항강변교회 담임)
  • 승인 2021.05.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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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으로 대우받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말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할 말이다.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사람이 사람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해 보는 말이다.

사람은 신분과 직업과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공평해야 할 존재다. 권력이나 경제력이나 교육력으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차등을 받아서 안 된다. 건강유무나 장애 유무를 벗어나 모두가 공평하게 대우 받고 대우를 해야 할 존재다. 남녀노소가 차별 없어야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인데도 우리가 숨 쉬고 살고 있는 현실은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고 학대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학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모가 자녀들을 자기 소유물 정도로 여긴다. 귀찮으면 버리기도 하고 화가 나면 쫓아내기도 한다. 자식을 돌보는 일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다.

그래서 자기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녀들을 홀로 두거나 감금해 둔다. 이런 부모들이 자신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 법적인 판결을 받아 보겠다고 재판 중에 있는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니다.

입양아 마음에 안들면 바꿀 수 있는 제도 만들면 어떻겠느냐

얼마 전에는 한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로 인하여 세상이 시끌했다. 현재 재판 진행 중이다.

양부모는 자신들이 자원하여 입양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골자다. 그 아이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심한 학대가 있었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이 사건을 놓고 ‘입양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대통령은 입양한 아이가 양부모의 적성에 맞지 않으면 다른 아이로 바꿀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가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어른들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위를 이용해서 차별하는 경우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돈을 가지고 차별, 차등하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다. 게다가 권력까지 가지게 되면 사람들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욕보인다. 법을 자기 편리 위주로 해석하고 적용하여 애먼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든다.

가진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에 쉽게 오르려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기회조차 앗아 간다.

특히 국민을 위해 전적 봉사해야 할 공직자(선출직,임명직)들이 국민을 우습게 안다.

국민이 준 자리이고 지위이고 힘인데 그것을 망각하고 자기 잘남으로 착각한다.

공직자들에게 있어서 국민은 무조건 봉사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공직자들이 국민을 함부로 대하고 차별하고 차등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 중에는 간혹 자신의 정치 논리나 정책에 동조하는 사람은 자기 편으로 우대하면서 반대하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여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수나 진보를 떠나 이런 국민을 향한 이런 태도는 국민을 차별과 차등하는 사람들이다. 정당과 정책의 차이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책을 반대한다고 해서 차별하거나 차등하는 일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저주받고 벌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들

예수님 당시에 사람을 심각하게 차별하고 차등했던 부류가 ‘종교인’들이었다. 그 당시 주류 종교인들은 유대교 중에서 ‘바리새파’였다. 성경에는 이들을 ‘바리새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만들어 놓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지위를 이용하여 차별과 차등의 언행을 일삼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만 특권을 부여 받았다는 소위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그렇게 태어나게 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남다른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무차별 공격하고 차별했다.

주로 그들이 차별하고 차등했던 부류들은 장애인들, 창녀들, 세무 직원들, 혼혈인들, 외국인들, 과부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께 저주받고 벌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이들을 의도적으로 피해 다니고 창피를 주고 이들의 존재감을 박탈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저 사람들 같이 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가? 예수님은 이들을 야단쳤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사람은 누구나가 하나님 앞에서 “천하보다 귀하고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학대하고 차등하는 언행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임을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기득권을 가지고 주류 사회를 형성했던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라 하면서 결국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버린다.

그들은 당당했다. 겁나는게 없었다. 세상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A.D.70년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완전 몰락하고 망하고 말았다. 국가도 자신들도 완전하게 몰락해 버렸다.

사람 자체로서 대우 받는날 고대

사람 귀하고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가정, 가정 공동체, 그런 사회, 그런 국가가 건강하고 행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목과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면서 사람 생명 경시하고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약한 사람들 차별하고 차등하는 모습들이 보여지고 있음이 안타깝다. 어린 자녀를 사랑하고 노인들 존경하고 어렵게 일하는 노동자들 고맙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정치 논리와 정책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서로의 인격과 생명만큼은 소중하게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 공직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우받는 사회는 법과 제도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아껴주고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세상 분위기와 교육에서 가능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 그 자체로 대우를 받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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