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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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이야기
  • 동탄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1.05.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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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중에서도 화장실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든 싫어하는 곳이 이곳이다. 하지만 화장실이 지저분한 곳이라 생각하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모르긴 해도 지금은 집 안에서 가장 깨끗하고 산뜻한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은 누구도 꺼리는 화장실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화장실(化粧室)은 화장하는 방? 맞다. 여자가 화장하는 방이다. 그러니 세상에 가장 좋은 향기가 나고 가장 아름다운 곳이 화장실 아닌가. 더럽다니 말도 안 된다.

아주 오래전 내가 열두어 살 됐을 때다. 서울 친척 결혼식에 갔다. 오줌이 마려운데 어디가 변소인지 알 수 없다. 옆에 화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곳이 아무래도 변소이긴 한 것 같은데 왜 ‘화장실’인가.

처음에는 그곳이 새색시가 화장하는 곳인 줄 알았다. 망설이다가 옆에 어머니 같은 여자분이 있으셔서 변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분이 웃으며 하는 말이 “야 이 촌놈아! 저곳이 변소다.” 하셨던 기억이 난다. 호방해 보이던 그 어머니도 지금쯤은 세상에 안 계실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변소를 화장실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내가 열두어 살 정도였다면 60년은 됐는데 그때 벌써 변소가 화장실이라 불리고 있던 걸 이 촌놈이 모르고 있었으니 가장 지저분한 변소를 가장 깨끗한 화장실이라고 역발상 한 기지가 놀랍다.

 오물의 냄새로 누구나 꺼리는 변소에 앉아 볼일을 보면서 이곳이 악취가 없고 좋은 향내가 나는 깨끗한 장소가 되길 염원하는 마음이 담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가장 더러운 곳이 가장 깨끗하고 향내 나는 화장실로 둔갑을 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지금의 화장실은 우리의 주거공간에서 아주 깨끗한 장소 중 하나가 됐다. 한 귀퉁이에 있었던 변소가 집 안으로 들어오고 방에도 붙여 놨으니 이곳이 더러운 곳인가.

진짜로 여자가 화장하는 방은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하다. 화장실이라고 달아놓으면 변소인 줄 알 것 아닌가! 예식장의 ‘신부대기실’이 화장하는 곳인가? 변소가 화장실을 가져가는 바람에 진짜 화장실이 찬밥이 되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지 않는가!

집에서 가장 먼 곳이 변소였다. 속담에 ‘사돈네 집과 변소는 멀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사돈네와 지저분한 변소는 멀수록 좋았다. 그래서 변소는 외떨어진 곳에다 뒀다. 그곳은 낮에만 가는 곳이 아니다. 추운 겨울밤, 변소가 가고 싶으면 작은 거야 어머니가 요강이나 밥그릇에라도 받았겠지만 큰 것은 가기 싫은 변소로 가야 한다. 혼자는 무서워 어머니가 따라가 서서 바라보고 있어야 하니 어머니까지 귀찮게 했다. 실은 어머니는 하나도 귀찮지 않았을지 모른다.

 변소 이야기니 점점 지저분해진다. 요즘에야 보드랍고 하얀 화장지를 쓰지만, 그때는 짚이 화장지였다. 그 불편함은 말하면 입 아프다. 앉아서 일을 볼 때 뒷독에서 오물이 튀어 엉덩이가 다 젖는다. 그걸 제대로 씻지도 못하니 어떻겠는가. 여름이면 파리가 득실거렸으니 될 수 있는 대로 변소는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 상책이었다.

 지금 가장 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은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비행기 타고 하늘을 나는 거? 물론 맞다.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맞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이라고 생각한다. 일보고 나면 비데란 것이 물로 깨끗하게 씻어주고 온풍으로 깔깔하고 산뜻하게 말려주니 그 개운함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언젠가 우리나라엔 집집에 있는 비데가 미국은 부잣집에나 있다고 하는 걸 읽은 적이 있다. 과장된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깨끗한 화장실에 이 비데기 같이 고마운 것도 없다. 그만큼 우리가 살 만하게 됐다는 얘기다. 다른 것도 좋아졌지만 ‘변소’가 더는 좋아질 수는 없다.

 한 집에 한 개씩이던 화장실이 두어 개씩 되니 아침에 발을 동동 구르며 쟁탈전을 벌이지도 않는다. 내 집은 지은 지 31년 됐다. 그때도 가족 공용의 것을 한 개 두고 안방에도 하나 더 만드는 집이 있다. 난 하나만 했더니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 둘이 살면서도 아침에는 쟁탈전을 벌이고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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