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잊힌 근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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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잊힌 근육들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21.05.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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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갓 태어난 아이의 발달과정을 보여주는 유튜브도 있다. 그 중엔 구독자와 조회 수가 꽤 많은 인기 유튜브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목을 가누는 것부터 시작해서 몸을 뒤집는 과정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태어나서 잠만 자던 아이는 점점 눈을 뜨고 팔다리를 흔들고 아기 손에 손가락을 대면 움켜쥐는 동작을 한다.

백일 무렵에는 다리를 들었다가 바닥을 찍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런 동작을 통해서 허리와 엉덩이를 잇는 코어 근육을 발달시켜 나간다. 3개월 정도가 지나면 목을 어느 정도 가눌 수 있게 되고 본격적으로 누운 자세에서 몸을 돌리려고 하는 뒤집기를 시도한다. 몇 주 동안 계속해서 시도한 끝에 마침내 4~5개월이 되면 몸을 뒤집는 데 성공한다. 이후에는 다시 엎드린 자세에서 누운 자세로 되돌리려고 시도한다. 잘되지 않아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지만 결코 포기하는 법은 없다. 그렇게 기다가 일어나 앉고, 손 짚고 일어나고, 마침내 돌 무렵에는 위태롭게 걸어가기 시작한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아이는 자신의 몸을 움직여 나가는 이 과정에서 결코 싫증을 내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수 없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무엇이 아이를 이처럼 쉼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일까?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의 본능에 새겨진 이 움직임을 향한 지향성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본능적 지향성의 궁극적인 의미는 결국 ‘자유’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뇌와 근육을 잇는 신경 경로를 형성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물론 해부학적으로는 태어날 때 운동신경에 의해 뇌와 척수와 근육은 이미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능적으로 뇌와 척수와 근육을 연결하는 감각 및 운동신경의 회로가 형성되어야 한다.

아무도 어릴 적 그 과정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 지난한 훈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뇌와 근육을 잇는 신경회로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경험하면서 마침내 피아노를 치고, 컴퓨터 자판을 치고, 글씨를 쓰고, 바느질하는 정교한 움직임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서 연결한 신경 경로지만 살아가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경로가 나타난다. 그 결과로 특정 근육은 거의 잊히게 되는데 잊힌 그 근육은 점차 약화되서 위축해 버린다. 마치 수족관에 갇혀서 쇼를 하는 범고래를 보면 등지느러미가 반듯이 서지 못하고 축 늘어진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다. 하루에도 수천 킬로미터의 대양을 누비는 범고래가 수압을 거의 받지 않는 좁은 수족관에서 한 방향으로만 돌다 보니 지느러미가 퇴화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도 근육의 움직이는 법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잘 나타난다. 특정 근육을 잘 움직이지 못한 결과 다른 근육이 상대적으로 더욱 긴장하거나 정상적인 움직임의 패턴이 깨져서 관절이나 근육의 통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잊혀진 대표적인 근육이 엉덩이 근육이다. 약간 해학적인 용어지만 ‘엉덩이기억상실증’이 바로 그런 현상을 가리킨다.

엉덩이 근육의 주된 역할은 허리를 펴도록 한다. 오랜 시간 앉아서 일하다가 일어설 때 엉덩이 근육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면 허리 부위의 척주기립근이 대신 일을 해서 허리를 펴게 한다. 제구실을 못 하는 큰 엉덩이 근육 대신 허리의 작은 근육이 허리를 세우는 일을 도맡아 하니 근육이 긴장되고 요통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어깨뼈(견갑골)를 움직이는 근육들도 쉽게 잊히는 근육이다. 어깨뼈에 붙어 있는 근육은 20개가 넘는다. 팔의 움직임에 맞추어 어깨뼈를 잘 움직이려면 이 근육들이 서로 잘 협조하여 움직여 줘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일상생활 가운데 이 근육들이 서로 협조하며 일할 기회는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결국 탈이 나서 어깨관절의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생각해보자. 오늘 하루 중 어깨 위로 팔을 든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혹시 온종일 컴퓨터 자판 위에만 놓여 있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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