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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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21)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6.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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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현감에 제수되다

전라도사(全羅都事)의 임기를 마친 조헌이 종묘령(宗廟令)으로 전임돼 한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1582년(선조 15년) 39세 때다. 그는 종묘령에 보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모를 모신다는 이유로 외직을 요청한다. 10살 때에 어머니를 잃었고 부평에 유배됐을 때 부친마저 세상을 뜬 뒤로는 홀로 된 계모를 모시고 있었다.

외직을 요청한 조헌에게 충청도 보은 현감(報恩縣監)이 제수됐다.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고을로 아무 연고도 없는 고장이다. 일찍이 홍주목 교수를 지냈으니 충청도는 두 번째 근무지였다. 그가 보은에 내려온 것은 8월이었다.

보은 현감을 인연으로 자신이 충청도에서 일생을 마칠 것을 예감이나 했을까. 보은 현감으로 내려온 그는 곧바로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살펴보고 그 어려운 실정을 적은 상소를 준비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조정에는 이를 올리지 않았다. 다행히 그 상소가 남아있어 당시 백성들의 어려운 삶과 고통을 짐작하게 하고 이를 바라보는 그의 안타까운 심정도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이 1582년 8월에 쓴 ‘의상소’(擬上疏)인데 그 내용 중에서 몇 부분만을 여기에 제시한다.

“오늘날 수령된 자는 모두가 칠사(七事), 즉 농상(農商)을 성하게 하고 호구(戶口)를 증가시키며 학교를 일으키고 군정(軍政)을 닦으며 부역(賦役)을 고르게 하고 사송(詞訟, 민사소송)을 간결하게 처리하며 간사한 무리들을 없이 하는 것을 능히 할 수 있다고 하나 신의 생각으로는 한 가지도 능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는데 그의 눈에는 칠사(七事)를 제대로 수행하는 올바른 관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 지방 수령들의 무능과 학정(虐政)을 지적하고자 했다.

“송곳을 꽂을만한 땅도 갖지 못했는데 일 년에 부역에 종사하는 날이 거의 한 달이 넘고 사소한 대출 양곡은 낭비가 많아 농량(農糧)을 능히 이어가지 못해 많은 백성이 추위와 굶주림에 있는 까닭입니다.”

“남자는 겨우 기저귀를 면하면 곧 군정(軍丁)에 보충되고 한 집안에 부과되는 부역이 많아 이미 견딜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세금을 중복해서 징수하는 화환(禍患)으로 농토와 집을 모두 팔아도 지탱할 수 없어 떠돌아 다니는 백성이 날로 늘어나고 동리는 쓸쓸해져 갑니다.”

조헌은 백성들의 부역이 과다하고 한 집안에 군정에 나가야 할 남자가 많아 농업과 양잠이 일어나지 못하고 떠도는 백성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으며 선비의 풍습과 민속이 날로 야박하고 모질어 가는 형편을 한탄했다. 특히, 아전들은 세목에도 없는 인정비라는 뇌물을 공연히 요구하며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러한 폐단의 근본적인 원인은 관아에 속해있는 서리(胥吏)들에게 있다는 것을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관아의 수령은 재임 기간이 단기(短期)고 실정(實政)에 어두운데 서리들은 장기인 데다가 급료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관(官)을 속여 농간을 부리고 백성을 협박해서 곡식과 재물을 훔치는 폐단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역을 고르게 해 간사하고 교활한 서리들이 중간에서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고 학문과 교육을 밝게 해 부화(浮華, 겉은 화려하나 실속이 없음)의 폐습을 지양하고 덕을 숭상하는 선비를 등용할 것이며 백성과 더불어 고락을 같이해 도리를 극진히 하고 수령들을 자주 바꾸는 폐단을 제거하고 요역(徭役, 장정에게 부과하는 노동)을 줄여 정치를 청렴하게 할 것을 상소하고자 함이었다.

이 ‘의상소’(擬上疏)가 비록 임금에게 닿지는 않았으나 사회적 폐단을 직시하고 이를 시정해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려는 그의 애민정신을 느끼게 된다.

이후에도 보은 현감으로 재직하며 상소를 올렸는데 백성의 질고(疾故)를 논하고 사육신을 정표(旌表)할 것과 왕자 제택(諸宅)에 사치를 금할 것을 청하는 내용이었다, 아쉽게도 이 소(疏)도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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