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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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이야기(1)
  • 임재근 북한학박사
  • 승인 2021.06.2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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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룡재는 식장산과 낭월동의 동남쪽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과거 이 고개는 옥천 군서로 접어드는 길목 역할을 했다. 현재는 곤룡터널이 개통되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곤룡은 본래 산의 형국이 용과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동네 노인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학살당하여 죽은 이의 뼈가 산처럼 쌓였으니, 곤룡은 ‘골령’의 예언적 지명이라고.

낭월동 산내 학살지는 일부 해제된 기밀문서 중 미군이 찍은 사진들과 1, 2차에 걸친 발굴 작업을 통해 그 당시의 참혹한 진실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빈칸은 많다. 아직 산내 학살지에 대한 전모를 가늠할 수 있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진행된 2차 발굴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발굴이 진행되자 북쪽 경계구역 경사면 30~50cm 깊이에서 머리뼈의 파편들과 사지뼈들이 출토되기 시작하여 2층인 검은 층 전체에 걸쳐 유해가 흩어진 채로 출토 되었다. 머리뼈 조각이 군데군데 부서진 채 함께 나타나는 점으로 보아 군데군데 모여 있는 머리뼈 조각들이 각각 한 사람의 머리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8구 정도의 유해로 가늠된다. 완전한 머리뼈가 없는 것은 사살당할 때 머리 뒤통수 쪽에 총탄을 맞았기 때문이며 유해 가까이서 총탄과 탄피가 나타나는 점으로 보아 확인사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후에 유해를 덮은 돌들과 기타 자연환경 등도 머리뼈를 조각내는 데 한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쪽 경계선 지점에서는 3m 깊이 정도에서 8구의 유해가 출토되었다. 이 유해들은 동서 방향으로 이어진 도랑을 따라 이어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품으로는 백색 개인 의복 단추와 총탄 및 탄피 그리고 의안 한 점이 출토되었다. 북동・북서 방면의 절단면에서 계속 유해가 나오고 있어 더 많은 유해가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발굴지를 경계로 확장하여 추가 발굴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한국전쟁기 민간인희생 2차 유해발굴 조사보고서: 대전 산내면 골령골』, pp15-19

산내골령골대책회의 임재근 집행위원장

카이스트를 졸업한 과학도로서 꿈을 뒤로 미루고 평화통일과 인권운동에 매진하며 ‘산내골령골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재근 박사를 만나본다.

민간인 학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이유는 어떤 것일까요?

민간인 학살 사건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활동과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예요. 2015년 2월 말에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민간 차원의 유해발굴이 일주일 동안 진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2014년 민족문제연구소, 4·9통일평화재단, 한국전쟁유족회 등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을 결성해 진주에서 유해발굴을 진행한 후 두 번째로 선정된 지역이 제가 활동하고 있던 대전의 산내 골령골이었습니다.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를 비롯한 대전의 여러 단체들도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유해발굴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유해발굴 지원팀에 결합해 유해발굴에 동참했습니다. 때마침 그때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써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유해발굴에 동참하면서 논문의 주제를 ‘한국전쟁 시기 대전지역 민간인 학살 연구’로 잡고 논문을 쓰게 되면서 더 본격적으로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한 활동과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산내 학살에 대해 독자분들에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에 의해 대전형무소 재소자를 비롯해 보도연맹원 등 1,800명에서 최대 7,000명 가량이 무참히 학살당해 암매장된 사건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서 전 국토가 무덤이라 할 만하지만 그중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사건은 피해 규모와 성격에 있어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입니다.

희생자들은 대전지역에만 국한된 것에 아니라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 관련자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분들이 많았습니다. 암매장된 구덩이는 길이가 짧게는 20~30m에서 50m, 100m, 최장 200여 m에 이르기까지 무척 깁니다. 이 구덩이들을 모두 이으면 1km에 달할 것으로 보여 대전 산내 골령골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최근 산내 골령골에서는 사건 발생 70년 만에 대규모 유해발굴이 진행되었습니다. 9월 21일부터 대략 40여 일간 진행된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약 80평 공간에서 유해 200여 구가 발굴되었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향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인 평화역사공원(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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