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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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26)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7.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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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원구곡가(栗原九曲歌) ‘제2곡’

二曲岧嶢獎峴峰(이곡이라 우뚝 솟은 장현봉) 千巖萬壑淡秋容(수많은 바위와 골짜기 가을 모습 맑아라) 西臺望了因瞻北(서대산을 바라보다 북쪽을 우러르니) 緬想蓬萊翠萬重(만 겹 멀리 봉래산 푸른 봉우리 생각나네)

제2곡은 장현봉(獎峴峰)으로 군서면에 있는 장용산 또는 장령산(藏靈山)이라고도 한다. 수많은 바위와 깊은 골짜기에 가을빛이 물들었다. 서대산을 바라보다 북쪽을 우러르면 봉래산(蓬萊山, 금강산)을 생각나게 한다. 그만큼 장현봉의 산세와 풍광이 금강산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읊은 것이다.

제3곡 임정(林亭)
三曲林亭小似船(삼곡이라 숲 속의 정자 작은 배와 같은데) 一隣茅屋自何年(언제부터 초가집 하나 이웃했나) 人擕棗栗呈新釀(사람들이 대추와 밤에 새 술을 드리니) 老수風流爾亦憐(늙은 태수의 풍류 그 또한 아름다워라)

제3곡 임정(林亭)이다. 지금의 군북면 이백리 이지당(二止堂) 부근이다. 작은 정자가 허공에 떠 있는 듯이 보이는 곳에 있다는 표현이다. 이웃에 모옥은 언제부터 있었다. 오래전부터 있는 초가집이란 뜻이다. 마을 사람들이 밤과 대추에 새로 뜬 술을 가져오니 인심 좋은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는 기쁨을 말하고 있다.

이지당(二止堂)은 본래 조헌이 후학을 교육하던 곳으로 각신서당(覺新書堂)이란 친필 현판을 내걸었다. 후에 각신서당을 개축하면서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조헌을 숭앙하는 뜻을 담아 이지당(二止堂)으로 바꿔 걸었다고 한다. 이지당 입구에는 우암이 친필로 “趙重峯先生游賞之所”라고 큰 바위에 음각해 놓았는데 중봉의 흔적을 보전하고자 하는 우암의 깊은 뜻이 아니었나 싶다.

제4곡 창병(蒼屛)
四曲蒼屛大石巖(사곡이라 큰 돌 바위 푸른 병풍 같은데) 巖前楓葉影㲯毿 (바위 앞에 단풍잎 그림자 짙어라) 山容峻秀無人見(산은 높고 빼어나지만 보는 사람 없는데) 戞玉鳴泉馨碧潭(우는 강물 구슬 부딪치듯 푸른 연못을 울리네)

제4곡은 창병(蒼屛)으로 군북면 추소리 부소무니(부소담악)에 있다. 바위들이 길게 병풍 같은 모양으로 서 있는 모양이 기이하다. 그 앞에 가을 단풍 그림자가 물결에 흔들린다. 산은 높고 빼어나지만 사람은 없고 물소리는 옥(玉)에 부딪치는 소리처럼 맑고 청아하다. 고즈넉하고 한적한 곳에서 만난 가을 산과 물과 기암절벽의 절경을 한 수의 시(詩)에 담았다.

 제5곡 동남곡(東南谷)
五曲東南谷口深(오곡이라 동남쪽 깊은 골 어구가 깊은데) 依俙仙侶隔雲林(저만큼에 구름 낀 높은 산은 신선의 세계와 닮았네) 林邊有客形容癯(숲가에 나그네 몸은 가냘파도) 山水高歌千古心(산과 물가에서 천고의 마음을 큰소리로 노래하네)

제5곡은 동남곡(東南谷)으로 군북면 추소리 ‘골냄이’로 추정된다고 한다. 동남쪽으로 골짜기가 깊숙한 것이 신선의 세계와 닮았다. 이곳의 풍광이 절경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개천가 아늑한 골짜기 숲가에 나그네 변함없는 마음으로 노래하네’라고 언제나 변함없이 즐길 아름다운 절경임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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