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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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남자
  • 동탄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1.07.1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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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었다. 각시가 이뻐서 부엌 주변을 맴돌면서 눈이 거기에 붙어 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대식구에 너무 고생하는 것 같고 안쓰러워 좀 거들고 싶지만 남자가 체통머리 없다는 소릴 들어서는 안 되었다. 각시도 신랑얼굴이 보고 싶지만 부엌으로 들어오라고는 못했다.

요즘은 남자가 주방 들어가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밥은 안 할망정 설거지라도 해야 한다. 우리같이 나이 먹은 세대도 주방에서 밥까지 하고 설거지하는 사람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런 면에선 한참 뒤처져 있다. 밥은 감히 생각도 못하고 설거지도 잘못하니 현대인으로선 낙제생이다. 워낙 그런 걸 못하니 우리 집은 아예 내가 주방 일에선 제외돼 있다. 어떤 땐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 가지는 한다. 빨래. 내 옷만큼은 내가 빤다. 세탁기를 돌리는 게 아니고 손빨래를 한다. 세탁기를 두고도 우리 집은 부부가 웬만하면 손빨래를 한다. 해서 우리 집 세탁기는 팔자가 늘어졌다. 마당 수돗가에 앉아 빨래에 낑낑댈 때 누가 들어오면 창피했었다. 그래도 요즘은 면역이 생겨서 괜찮다. 기술도 많이 늘었다. 주방일 못 도와주니 이거라도 짐을 덜어주자는 마음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이리 해왔다.

요즘은 남자 일 여자 일 확연하게 구분을 않는다. 직업도 맞벌이가 대부분이다. 남자도 출산휴가를 받아 아이를 키운다. 그렇기 때문에 주방일도 남자가 여자처럼 하기도 한다. 밥을 못하면 최소한 설거지만이라도 한다. 남녀평등은 가사부터 시작된다. 여기에 반기를 들거나 등한시하고는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지금 초등학교는 교직원이 거의 여자일색이다. 남 교직원은 희귀한 존재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교장 교감도 여자가 한다. 교장 교감이 여자란 것은 생각하기 힘든 세상도 있었는데 그것도 이젠 반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네 이장을 여자도 한다. 대통령을 여자도 하고 왕도 여자가 하는데 말해 무엇하랴.

한데 남자 일 여자 일 구분이 없지만 능력이나 적응도 면에서는 어차피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표시가 많이 나는 게 눈만 뜨면 하는 자동차 운전이다. 똑같이 면허를 취득해서 운전을 해도 여자는 뒤쳐진다. 옥외 평지 주차장도 그렇지만 주차타워 같은 곳에선 남녀가 확연하게 표시가 나게 된다. 남자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여자는 힘들어 하고 겁을 먹는다. 

오래 전에 남녀가 주차를 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본 게 기억난다. 남자는 쉽게 갖다 대는데 여자는 몇 번을 시도하다간 포기하고 마는 영상이었다. 그 이유가 남자는 시야를 넓게 보는데 여자는 좁게 보는데 있다고 했다. 이것은 남녀의 신체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니 남자가 우월감을 가질 일은 아니다. 길가다 앞에서 제대로 못하고 흐름에 방해되는 여자운전사가 있으면 “집에서 살림이나 잘하지 왜 차를 몰고 나와 힘들게 하느냐!”고 고함을 치던 시대도 있었다.

공장생산직 같은 힘을 써야 하는 곳은 남자일색이지만 봉제공장 등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섬세함이 필요한 곳에는 여자들이 많다. 간호사도 남자도 있지만 여자 일색이다. 여객기나 전투기 조종은 남자 세상이고 대형트럭이나 버스운전도 남자가 독점이다. 총을 들고 치열한 전투를 하다 죽어나가는 것도 남자다. 남녀 평등한 세상이지만 평등이 똑같이 적용될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 

남자 여자가 가장 동등한 대우를 받는 곳이 그래도 공무원 사회일 것이다. 소방, 경찰공무원은 일의 특성상 남자가 많지만 일반직 공무원 같은 경우는 남녀의 구별이 없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미 초등학교는 여초(女超)현상이 일어났지만. 

얼마 전 신문의 머리기사에 앞으론 태어날 때부터 아이가 엄마 성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할 예정이란 얘기가 나왔었다. 2025년까지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하는 ‘부성(父姓) 우선’ 원칙을 바꾸기로 했단다. 지금도 엄마 성을  따를 수 있는 법이 시행 중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론 엄마 성으로 출생신고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오랜 세월 내려온 씨족 개념도 사라질 날이 오는 모양이다. 김 이 박 씨의 족보도 옛말이 될 수 있다. 성씨가 혼탕, 잡탕이 된다. 나이든 사람으로선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관습이나 인식도 시대 따라 변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도 생각을 바꿔야지 어쩔 도리가 없다. 한데 신중히 해야 할 것도 있다. 남녀평등의 외침 같은 것도 지나쳐 어느 한쪽이 역차별을 당한다면 이 역시 남녀평등원칙의 위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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