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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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29)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8.0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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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를 칼로 베고 이발과 절교

조헌이 전라도 남평으로 가는 뜻은 정여립을 향하는 이발의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지 바로 잡아보려는 애틋한 우정이었다. 남평에서 이발을 만나 더불어 논쟁하며 그의 생각을 바로잡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조헌이 율곡을 배반한 이발의 행위를 힐책하자 “율곡은 성인(聖人)이 아닌데 어떻게 매사에 옳을 수 있으며 나더러 배반 운운하는데 나는 그런 일이 없고 당신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했다. 이에 조헌은 “정여립의 엎치락뒤치락하는 꼴이 무상하다는 것은 거리에 있는 사람까지도 다 아는 사실인데 당신은 어째서 즉시 그와 절교하지 않고 도리어 일을 같이하니 그것이 무엇이냐?”고 질타했다. 이에 이발은 “사람의 소견은 처음에는 옳았는데 결과가 그를 수도 있고 처음은 나빴는데 결과는 옳을 수도 있으니 정여립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아마도 그는 뉘우치는 뜻이 없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조헌은 안타까운 마음에 애절하고도 차마 하기 어려운 말로 무려 10여 일을 간곡하게 충고했으나 이발은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조헌이 말하기를 “자네가 내 말을 쫒지 않고 자기의 견해만 편집하며 우계와 율곡 선생을 배척하고 정여립을 추장하니 뒷날에 가서 후회막급한 일이 있을 것이고 내가 자네와 결별할 바에는 이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없다”하고 자기가 입고 있던 털옷을 이발에게 내 주었다. 그 털옷은 일찍이 조헌이 전라도사로 있을 때에 이발이 준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결연한 얼굴로 지니고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마주 앉았던 자리를 칼로 벤 조헌은 칠언시(七言詩) 한 절(一絶)을 지어 이로써 결별하는데, 마지막 구(句)에 이르러 “나는 가고 자네는 남되 각자가 수성(修省)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물을 뿌리며 이발과 절교했다.

이때 박천연 형제가 한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조헌이 얼굴이나 알 정도의 사람들이었다. 조헌이 떠난 뒤 박천연이 이발에게 그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이발은 “삼대(夏·殷·周) 시대나 볼 수 있는 인물인데 고집이 질병이다”라고 했다. 이에 박천연이 “말세(末世)와 같은 우리나라에 어떻게 삼대(三代)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있을 수 있느냐, 당신 말이 지나치다”고 하니, 이발이 말하기를 “자네나 우리 따위는 조헌을 이렇다 저렇다 하고 헤아려 논할 바가 못 된다”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날이 저무는 밖을 바라보며 “오늘은 중봉이 몇 리를 가다가 쉴 것인지”하고 떠나가는 친구의 먼 길을 걱정하며 못내 아쉬운 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뒤에 이발이 서울에 올라가는 길에 공주제독관(公州提督官)으로 있는 조헌에게 만나보기를 청한다. 그러나 이발의 청을 거절하고 만다. 조헌이 다음 해에 올린 만언소(萬言疏)에서 이발과의 결별 그리고 이때 이발의 청을 거절한 일을 이렇게 말했다.

“신은 그래도 옛 친구인 것에 연연하여 차마 즉시 교제를 끊지 못하고 추위를 무릅쓰고 남쪽으로 달려가 반복하여 충고하여 미혹된 마음을 돌이키기를 바라고 애절한 말로 간절히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그들 형제는 노여워하는 뜻이 더욱 치솟아 수그러지지 않고 오히려 성혼은 그르고 여립은 옳다 하며 숫자가 많은 쪽이 사람이고 적은 쪽이 불초(不肖)한 자들이라고 하면서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부라리며 마치 날뛰는 돼지 같은 기세였습니다. 신이 이에 세 차례 편지를 보내 교제를 끊고 개탄해온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을을 지나면서 한 번 만나기를 청했으나 신은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고 두 편의 시를 지어 거절했습니다.”

그 뒤부터 조헌은 정여립을 논할 때마다 역적질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너무 심한 말이 아니냐고 했으나 그는 “나는 유독 그가 사우(師友)를 배반한 것만으로 그르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가 상 앞에 있을 적에 말과 기색이 패오(悖傲)하다는 말을 자세히 들었으니 이는 반드시 역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라고 했다. 이후에 조헌의 말대로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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