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그 멋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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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그 멋짐에 대하여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21.08.0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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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하는 소리가 오진혁 선수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마지막 한 발의 시위를 놓는 순간에 나온 소리였다. 이 한 발로 오진혁·김우진·김제덕으로 이뤄진 남자양궁 대표팀은 도쿄올림픽 대만과의 양궁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화살이 과녁에 아직 닿기도 전이었다. “끝”이라는 나지막한 소리는 필자에게 전율과 같은 감동을 주었다. 그 짧은 소리에 담겨있는 무엇 때문이었다. 

시위를 놓은 그 순간에 오진혁 선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70m 밖에서 쏜 자신의 화살이 과녁의 10점짜리 원안에 들어갈 것을. 

그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에 무서우리만큼 침착한 모습 그리고 확신에 찬 모습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번 도쿄올림픽 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양궁에 걸린 5개의 금메달 중 4개를 석권하고 여자단체전은 9연패의 위업을 달성하였으며 남자단체전은 2연패를 하는 양궁신화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여러 요인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 요인에는 투명한 협회의 운영과 공정한 선수선발, 즉 네임밸류나 인기도, 지난 업적 등을 배제하고 엄정한 경쟁을 통해서 대표선수를 발탁하는 선수선발 시스템, 유소년부터 청소년대표를 거쳐 국가대표에 이르는 체계적인 우수선수발굴과 육성 시스템, 인공지능(AI) 코치, 고정밀 슈팅머신, 점수 자동기록 장치, 선수 맞춤형 그립과 같은 스포츠과학의 적극적인 적용 등이 있다. 

특히 실제 경기장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한 것이 우승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즉 도쿄대회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을 그대로 재현하여 진천선수촌 훈련장을 만들었는데 경기장의 사대, 표적판 플랫폼, 이동팬스, 초고속 카메라와 레일캠, 공동취재구역 등을 똑같이 하여 훈련했다. 또 그곳 기후조건을 감안하여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강풍에 대비한 훈련을 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훈련방법은 선수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관중들로 꽉 찬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연습하는 것이다. 수만 관중이 만들어내는 함성과 각종 소음, 심지어 활을 쏘는 바로 옆에서 마스코트를 입은 사람이 춤을 추는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표적에 집중하는 훈련을 했다. 

양궁이나 사격, 골프와 같은 종목을 폐쇄기술(closed skill) 운동이라고 한다. 보다 동적인 움직임이 요구되는 개방기술(open skill) 운동에 대응하는 용어이다. 폐쇄기술 스포츠종목에서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가 경기수행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평소 연습할 때에는 매우 높은 기량을 발휘하지만 경기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결정적 순간에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장 안에서는 매 순간 수많은 환경적 변수들이 선수들의 심리적, 정서적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활시위를 놓으며 “끝”이라고 말하는 소리에서 느껴진 무서울 만큼의 침착성과 집중력은 바로 그러한 훈련으로부터 나온다. 오진혁 선수는 시위를 놓으며 그 화살이 틀림없이 과녁의 한복판을 명중할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소위 ‘감’이라고 한다. 

심지어 주말 골퍼에게도 감이 좋은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이 있다. 수준급의 골퍼라면 공을 때리는 순간에 그 공이 목표지점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를 알 수 있다. 즉 백 미터 이상 떨어진 홀까지 방금 자신이 친 공이 짧은지, 넘어갈 것인지를 불과 몇 미터의 범위 내에서 알 수 있다. 운동에서 감이 좋다는 것은 어떤 계산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직관적으로 아는 것이다.

“끝”이라는 한 마디에 함축된 것은 바로 직관력이다. 그 직관력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활시위가 당겨져 왔는지, 얼마나 많은 땀이 배어 있는지 알기에 감동이 있다. 멋짐이 폭발한다. 같은 옥천군민으로서 이번 양궁 남자단체전 2연패에 크게 기여한 태극전사의 일원인 김우진 선수의 집이 멀지 않은 동네인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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