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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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21.08.1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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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의 모든 생물들은 저마다 움직임의 특성이 있다. 물론 그 움직임은 생존하는데 최적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올빼미나 족제비와 같은 동물들은 주로 밤에 움직인다. 사자는 사냥감을 잡기 위해 짧은 거리는 매우 빠르게 달리지만 긴 시간을 달리지는 못하고 하루 중 대부분을 낮잠을 자며 보낸다. 벌새는 쉬지 않고 부산스럽게 날개를 움직이며 꿀을 빨아 먹는다.

인간의 움직임은 생존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을까? 인간이 발전시켜온 문명 속에서 인간의 움직임은 생태학적으로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를 잃어버렸다. 인간은 더 이상 먹을 것을 위해 다른 동물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의자에 앉은 채 일을 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이러한 움직임은 생태적으로 생존과 어떠한 연결성도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인류문명이 조성한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아직 우리의 유전자 깊이 간직된 움직임의 특성은 무엇일까? 인류학의 관점에서 생리·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이 가진 움직임의 특성에 대해 주저없이 ‘지구력’을 지목한다. 우리 조상들은 먹을 것을 구하려고 거의 온종일 돌아다녀야만 했다. 화살과 독화살, 창을 들고 사냥감을 추적하고 몰기 위해서 몇 시간이고 달리고 움직여야 했다. 또 과일이나 땅에서 나는 뿌리 식량을 발견하기 위해서 수십 킬로미터를 걷거나 뛰어 다녀야 했다. 

이러한 생존양식의 핵심은 ‘지구력’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구력이 요구되는 움직임을 계속 시도할 수 있게 해주었을까? 만일 이렇게 많은 칼로리를 쓰고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을 무릅쓰고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먹이를 찾아다니는 부담을 감수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칼로리를 화폐라고 할 때 수렵과 채취는 판돈이 큰 게임으로 파산하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움직임의 힘’이라는 책의 저자인 켈리 맥고니걸 박사는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뇌에서 일종의 신경학적 보상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보상작용은 달리기를 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잘 알려진 ‘러너스 하이’와 관련되어 있다.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를 할 때 숨이 차고 힘든 시점을 지나고 갑자기 몸이 가뿐해지면서 약 4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지속되는 현상이다.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러너스 하이’라고 부른다. 심리적 현상으로는 불안감이 줄어들고 통증에 대한 내성이 증가하며 차분한 마음과 알 수 없는 행복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효과는 뇌에서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s)라고 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증가하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도 엔돌핀과 도파민과 같은 화학물질이 함께 작용하여 낙관적인 기분과 행복감을 고양시킨다. 과거에는 엔돌핀이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엔돌핀은 고강도의 운동에서만 뚜렷하게 분비된다. 반면에 엔도카나비노이드는 중정도의 강도로 30분 정도 운동할 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엔도카나비노이드는 걷는 것처럼 낮은 강도로 운동하거나 매우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달리는 경우에는 혈중 수치가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러너스 하이’가 심박수가 분당 120회 정도로 30분 이상 달릴 때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즉 너무 가볍거나 너무 힘든 운동보다는 중정도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때 이러한 신경학적 보상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러너스 하이’는 운동에 따른 고통을 잊고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뇌의 화학물질을 통한 보상작용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보상작용은 단지 불안감과 우울감을 감소시키고 낙관적인 기분과 행복감을 고양시키는데 그치지 않는다. 맥고니걸 박사에 따르면 이러한 작용은 사람들과 가깝게 느끼도록 해주기도 하고 관계를 맺도록 도와준다. 

즉 운동을 통해 나눔과 협력, 놀이와 유대감과 같은 사회적 즐거움을 선물로 받을 수 있으며 과거 인류의 조상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듯이 현대사회의 절박한 굶주림인 외로움에서 우리를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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