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주고 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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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주고 간 선물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1.08.1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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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거리는 바람에 몸을 흔들다가 풀숲에 ‘툭’ 하고 떨어지는 알밤 소리는 가을의 정취를 한층 돋아준다. 밤나무를 쳐다보니 밤송이마다 알밤들이 바깥세상을 엿보고 있다. 더러는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태세다. 밤송이는 온몸을 가시로 무장하고 태양의 뜨거운 사랑을 물리치는 듯 싶더니 저렇게 알밤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 속내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숭쟁이다.

집 앞 논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벼 이삭을 보며 겸손을 배운다. 겸손하고자 마음을 가다듬어 낮아지려고 해도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교만은 어쩌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여름내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고 오만하게 서 있는 쭉정이를 따가운 볕으로 담금질하고 목말라 할 때는 단비를 내려주어 알곡 되게 한 것은 여름이 아니던가. 

벼 이삭이 알알이 영글어 스스로 고개 숙일 줄 알게 되었으니 한여름의 수고가 헛된 것 같지 않다. 때때로 드러나는 내 교만도 쭉정이에서 비롯된 것이니 나도 담금질 당해야 알곡 되려나.
올해 고추 농사가 대풍이다. 빨갛게 익은 고추가 다닥다닥 달렸다. 빨간 고추를 따서 바구니에 가득 담으니 수확의 기쁨이 넘친다. 메뚜기도 즐거운지 후드득 튀어 오른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가 바스락거리며 가벼운 몸짓을 한다. 도시 생활을 벗어나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얻은 결과물이다. 사각사각 씨앗 뒹구는 소리가 명랑하다. 손등이 햇볕에 검게 그을도록 고추와 함께한 수고를 잊는다. 마음 뿌듯하다. 그동안 농사를 지으시는 맏동서가 보내 준 고춧가루를 수고비 몇 푼으로 때워 온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고추는 가꾸며 키우는 것보다 말리는 과정이 더 어렵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고추를 말릴 때는 우선 햇볕에 적응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고추를 따면 며칠 동안 그늘에서 말리거나 얇은 무명천으로 덮어서 직사광선을 피하게 한다. 나는 그 방법을 몰라서 처음에 딴 고추 말리기에 실패했다. 어미의 탯줄에서 갓 떨어진 몸을 바로 따가운 볕에 내몰았으니 뜨겁고 숨 막히고 얼마나 놀라고 괴로웠을까. 새로운 세계에 적응할 틈도 주지 않은 내 무지로 인해 고추는 몸부림치다 곯고 하얗게 속병이 든 것이리라. 요즘 농가에는 대부분 농산물 건조기가 있어 고추 말리기가 수월하다.

바싹 마른 태양초를 깨끗한 행주로 닦아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는다. 너무나 소중해서 만지고 또 만져보며 그 봉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고추를 뒤적거려 잘생긴 녀석들을 골라 놓으니 품평회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어릴 적, 어머니는 잘생긴 통고추를 골라 항아리에 따로 보관하셨다. 어머니의 소망은 우리 집 대문에도 고추가 달린 금줄을 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첫째인 나를 낳으시고 둘째로 아들, 그 후로 우리 집 대문에는 솔가지와 숯덩이만 달린 금줄이 내리 여섯 번이나 걸렸다. “어이구, 저런! 영월댁이 또 딸을 낳았네. 쯧쯧…” 하는 동네 사람들의 동정 어린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서운해 하셨다. 아버지는 외로 꼰 새끼줄에 고추가 달리지 않은 금줄을 묵묵히 걸어 놓으셨다. 속내는 어떠하셨을지 모르지만….

나도 탐나는 고추 몇 개를 골라 놓는다. 요즘은 금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젊은이들이기에 상징으로 삼고 어느 금줄이든 걸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내년쯤엔 우리 아들네 집 현관에도 금줄이 걸리려나?

가을을 맞으면서 뒤돌아본 여름. 오는 것만 반기고 떠나는 것에 소홀할 수 있는 감정을 일깨워 주었다. 특히 고추를 말리면서 사색했던 순간들은 소중한 선물이다. 눈에 보이는 결실만 반기고 그 결실을 위해 묵묵히 헌신했던 것들에 대한 수고를 잊고 살아온 때가 얼마인가. 

하늘, 땅, 태양, 어김없이 찾아오고 가는 아름다운 사계절과 정겨운 이웃들에 대한 감사, 범사에 감사함을 깨닫게 되는 지금은 여름이 내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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