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우리 이장님] 복서 출신 이장, 헌신과 봉사가 삶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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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 우리 이장님] 복서 출신 이장, 헌신과 봉사가 삶의 중심
  • 김병학기자
  • 승인 2021.09.02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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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면 사양2리 김종범 이장

“다른 마을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저희 사양2리의 경우 대청댐 보호로 인한 그 어떤 개발행위도 할 수 없도록 묶어 놓는 바람에 낙후마을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라며 말문을 여는 옥천군 군서면 사양2리 김종범 이장(56).

사양2리는 김 이장이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어머니의 품속과도 같은 곳이다. 지난 세월 짧은 기간 도시에서 생활을 할 때도 늘 가슴 한 켠에는 고향 사양2리를 잊어본 적이 없다.

사실 김 이장의 전직은 ‘복서(Boxer)’다. 아마도 형님 두분이 모두 복서의 길을 걸었기 때문인지 김 이장 자신도 자연스럽게 복서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김 이장의 복서의 길은 그의 나이 열네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그는 서울체육고등학교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학교는 일찌감치 그에게서 복서의 기질을 다분히 감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래서 서울로 향했다. 이후 10년이라는 세월을 오로지 복싱 외길만을 걸었다. 옆을 돌아볼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복싱만이 삶의 전부로 생각하며 틈만나면 샌드백을 두드렸다. 지금이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복서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는 밥해 먹을 쌀이 없어 1주일을 라면으로 때운 적도 있었다. 다른 복서들의 매니저는 그래도 호주머니 사정이 나아 제때 밥이라도 사주는데 김 이장은 달랐다. 김 이장 본인도 힘든데 매니저까지 자신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니 자연 체력은 허약해질 수 밖에.

심판들의 이해 못할 판정에 복서의 길 완전히 접어

그렇다고 매니저를 탓하기보다는 배가 고프면 고플수록 더욱 더 힘차게 샌드백을 쳤다.

그러던 1987년 이맘때, 드디어 세계랭킹 선발전이 잡혔다. 있는 힘껏,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당시 그 경기는 누가 봐도 김 이장의 승리였는데 심판들은 무승부 판정을 내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누가 봐도 내가 이긴 시합인데 무승부라니” 마음이 쓰라렸다. 원통했다. 억울했다. 하지만 이미 내려진 판정을 뒤엎을 상황도 아니었기에 깨끗이 승복했다. 이 또한 진정한 스포츠맨이 지켜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 이후 영원히 링을 내려오고 말았다.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긴 시합임에도 불구하고 이해 못할 심판들의 행태는 김 이장으로 하여금 링위에 설 마음을 앗아가고 말았기 때문.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도 형편이 어려워 복서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면 어느 누구보다도 든든한 매니저가 되어 줄 생각은 가지고 있다.

자연스레 이장 추대받아

주저없이 고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살기 위해 닥치는대로 땀을 흘렸다. 그러던 1988년, 금강유원지에서 장사를 하다 배운 잠수부 생활이 그의 새로운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김 이장은 잠수복을 입고 시체인양은 물론 익사 직전에 있던 사람들도 숱하게 구해 냈다. 그러다 2000년 지금의 집으로 유턴했다.

2016년 말, 전임 이장의 사퇴로 자연스레 사양2리 이장을 떠맡게 되었다. 아마도 지난 세월 김 이장의 사심없는 마음과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지켜본 주민들이 후한 점수를 주었는지 모른다.
“사실 제가 사양2리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한정돼 있습니다”라는 김 이장은 “지난 5년 간 이룬 크고 작은 사업들도 사실은 개발위원님들이 도움을 주셔서 가능했습니다”라며 겸손해 한다. 김 이장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개발위원들과 상의를 한 후 행동에 옮기는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김 이장은 이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사송골 입구에서 마을 안까지 1km에 달하는 길을 왕복 2차선으로 말끔히 확포장했다. 거기에 오랜 주민숙원 사업으로 거론돼 오던 생활오폐수 관로 설치를 비롯한 상수도 설치 등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밤낮 구분없이 발품을 팔았다.

그러한 김 이장이 이제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바로 ‘공동목욕탕’을 만드는 것. 마을 내에 마땅한 목욕탕이 없는 사양2리 어르신들에게 목욕탕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시설이라 생각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동목욕탕만큼은 만들고 싶습니다”

사양2리는 108가구에 120명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특히 외지인과 원주민 사이가 매우 부드럽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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