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역행하는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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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역행하는 종소리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9.0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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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라고 종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여기에 ‘사제(司祭)서품을 받은 자, 주교 다음가는 성직자, 성사를 집행하고 미사를 드리며 강론을 하는 사람’을 신부(神父)라고 가톨릭 신부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천주교의 종교 의식이 행해지는 집’을 성당(聖堂)이라고 또 정의하고 있다.

종교, 신부 그리고 성당. 이는 모두 가톨릭을 수식하는 수식어들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교나 여기에 관계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또 그들은 비종교인들과 뭐가 다르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주지하디시피, 종교란 가능한 상대방에게 져주며 해하지 않고 더불어 베풀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갖는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을 모으는 곳이 종교시설이다. 또 그런 목적에 부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교인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들은 매사에 말 한마디라도 신중을 기해야 하며 행동 하나에도 책임을 질 줄 아는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감도 지워져 있다.

문제는 이러한 수식어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는 종교인이 얼마나 될까, 아니 있기는 있는 걸까 이다.

과거 속의 역사물

우리는 옥천성당에서 발생하는 종소리를 두고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무신론자들도 가능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 하는데 명색이 성당이라고 하는 종교시설에서 불특정다수의 군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과연 합당한 행동인지 묻고 싶다.

지금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과거 1960~70년대에나 존재했던 것으로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역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종소리를 울린 것은 성당보다는 개신교가 더 적극적이었다. 그러한 이유로는 개신교에 가면 허기진 배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고 이러저러한 놀잇감이나 친구도 사귈 수 있는 그런 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선교에서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도구로 종을 사용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방해를 받자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개신교인이 아닌 비종교인들의 마음을 먼저 알아 차리고 지역주민들이 싫어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겠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신교는 더 이상 종을 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 쳐왔던 종탑마저 내렸다. 

그런데 왜 성당은 아직도 그러한 종을 치고 있을까, 혹여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종소리를 듣고 성당으로 나오라고 간접적인 포교활동이라도 하는 것일까.

확언컨대, 종교든 뭐든 불특정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무리 좋은 소리도 그들만이 좋아할 뿐 다른 사람들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시도때도없이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평소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성당에 대해 반감마저 일으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가뜩이나 포교하기도 힘든데 그나마 성당에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게 한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계산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 관계자들은 전례라는 이유로 멈출 수 없다고 하니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할까. 아무리 좋은 것도 남들이 싫어하면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종소리는 더 이상 향수도 추억도 그 무엇도 아니다. 소음이며 공해다.

종교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야

세상이란 시대가 변하면 그에 따라 변해야 하는게 맞다. 남들은 다 휴대폰을 쓰는데 자신들만 다이얼 전화기를 고집한다는게 말이나 되겠는가, 남들은 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 자신들만 자전거를 고집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지금의 옥천성당은 마치 과거로 향해 전력질주하는 것만 같다.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문제는 그러한 고집이 결국은 자신들의 발목을 죄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요구한다. 종소리라고 하는 하나의 형상만으로 특정 종교를 폄훼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다만, 지역사회 내에 존재하는 종교시설이 지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욕을 먹는다면 더 이상 그러한 종교는 존재해야 할 가치를 상실하고 말 것이라는 조심스런 경고를 하고자 한다.

단 한사람이라도 피해를 입는다면 그것도 분명 피해다. 우리 속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도 소중하지만 길을 잃고 헤매이며 고통받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도 소중하지 않는가. 
성당은 성경까지 외면해 가면서 존재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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