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담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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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담의 길목에서
  • 김용현 법학박사, 시인
  • 승인 2021.09.16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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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첫 상담민원인이 들어오며 음료수를 사와 드시란다. 정말 고마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대접하려고 곽째로 사다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비타 500상자에서 한 병을 꺼내 그에게 권하면서 함께 마시자 했더니 흔쾌히 응한다. 오늘은 처음부터 기분 좋은 날이다. 대부분 상담민원인은 고급지식과 오랜 경험으로 상담을 해 주면 거의 받을 것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자기 것 가져가는 것처럼 하고 가버리고 더구나 자기가 의도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성질을 내며 “괜히 왔다.”라고들 하고 가는데 이처럼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절대로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이런 고마운 사람이 있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은 자기 문제에만 몰두해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는 사람은 드물며 또 자기 문제는 답을 다 가르쳐 주었고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자기 얘기를 더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나라 국민이니 그에게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마지못해 간다. 이런 사람은 극히 개인주의자이고 더불어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남자와 여자 두 명의 참 어려운 사람이 있었다. 상담을 금하고 있는 사항인데도 판단을 해 주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이었다. 특히 진행 중인 민사사건에 관하여 이기느냐 지느냐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행 중인 사건은 천차만별로 당사자가 소송수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오는데 상담에서 이기는 답(방법)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면 내가 당해 재판장도 아니고 점쟁이도 아니라 해도 계속 물으면 할 수 없이 밖에 게시된 법원장의 고시문(소송 진행 중인 사안은 상담할 수 없다)을 보여 주는데 그러면 괜히 왔다고 하며 가는 사람들도 꽤 있다.

어떤 사람은 알려주는 것을 바로 알아듣지만 대개의 상담민원인은 이해하지 못하고 묻고 또 묻거나 몇 번을 대답해 줘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도 많은 바 바로 답을 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사람에게는 “‘1+1’은 얼마냐고 물으면 1초도 안 돼서 ‘2’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법률문제나 사회학에서는 사안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다”라며 예를 들어 알려 준다. 또 답을 알려주면 “그렇게만 하면 되느냐”고 ‘만’을 붙이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럴 때는 “나는 여기 혼자 있지만 우리 부모님이 보실 때는 아들이고 아내가 볼 때는 남편이며 아들들이 볼 때는 아버지고 제자들이 볼 때는 교수님이며 직원들이 볼 때는 국장님으로 부르는데 이처럼 관점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라고 알려주면 고개를 갸웃하고 간다.

어느 이혼한 아주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자기 친아버지가 재산이 있다고 수급자격을 취소당했는데 이를 복원시키는 방법을 물어서 행정기관이나 행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줄지는 모르겠지만 행정심판법에 의하여 기초생활수급자격취소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구하거나 행정소송법에 의하여 기초생활수급자격취소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하라고 하였더니 이를 하자면 돈이 든다고 하기에 법률구조공단을 알려 주었다. 가면서 입속말로 ‘오늘 당장 저녁 먹을 돈이 없다’고 하므로 지갑에서 돈을 꺼내 그에게 주면서 짜장면이나 사드시라 했다. 오래 근무하다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퇴근 무렵 한 여인이 왔다. 아직 내민 서류도 파악하지 않았는데 질문을 하지 않느냐고 한다. 원래 상담인이 상담위원에게 묻는 법인데 질문하라니 황당하기도 했지만 정신이상자가 분명하다. 그래도 표현은 안 하고 가져온 서류를 파악한 뒤 이것저것 물은 결과 그녀가 요구하는 상담사항은 정부수입인지와 송달료를 내지 못하겠다는 것이 요지이므로 ‘소송구조신청’을 해 보라며 담당과를 알려 줬더니 그래도 영 불편해하며 나간다.

퇴근 후에 어느 아주머니가 오더니 “이리 가면 저리 가라 하고 저리 가면 다시 저리 가라” 한다고 푸념을 하기에 알고 보니 담당하고 처리할 곳을 잘못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말해도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 속으로 씁쓸하게 웃으며 알아보니 그녀의 상담사항은 피상속인이 얼마 전 사망하였는데 어찌해야 하느냐이다. 그래서 재산상속과 그에 관련된 것을 메모해 가면서 설명한 뒤 피상속인의 빚이 너무 많아 바로 대전가정법원에 가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하라고 권하며 상담실 밖으로 나와 손으로 대전가정법원을 가리켜 주었다. 그리고 내일 업무가 시작되면 가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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