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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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6)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9.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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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입니다

조헌의 소장을 불태워 버린 선조
    
1587년(선조 20년) 12월, 한양에 올라온 조헌은 ‘청절왜사소’ 1·2 봉서와 과거 관찰사가 받지 않은 다섯 건의 상소를 선조에게 올렸다. 조헌의 상소를 받은 선조의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선조는 조헌의 소장을 궁내에 보류해 두고 회보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자 정원에서 임금에게 소장의 조속한 처리를 독촉하게까지 이르렀다. 이 일에 대해 『선조수정실록』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전 교수(敎授) 조헌이 소장을 올려 왜국에 사신을 보내지 말 것을 청하고 아울러 전의 소장도 올렸으나 회보하지 않았다. 조헌이 향리로 돌아오고 나서 일본 사신이 와서 통빙을 요구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드디어 소장을 초하여 그것이 실책임을 극력 말하는 내용으로 감사에게 올렸다. 감사는 ‘풍신수길의 찬시(簒弑 임금을 죽이고 그 자리를 뺏음)에 관한 일을 자세히 모른다’하고 소장에 또 재상을 논했으므로 기휘(忌諱 꺼리어 싫어함)에 저촉된다고 하여 물리치고 받지 않았다. 이에 조헌이 도보로 서울에 들어와서 전에 시사에 대해 말한 다섯 건의 소장과 함께 올렸더니 임금이 궁내에 보류해 두고 내리지 않았다. 정원이 소장을 궁내에 너무 오래 보류해 둔다고 하여 사관에게 내리기를 청하니 선조가 비로소 하교하기를 ‘지금 조헌의 소장을 보건대 이는 곧 인요(人妖 상식에 벗어나 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다. 하늘의 견고가 지극히 깊어 두렵고 조심스러움을 견딜 수 없다. 어쩌면 과인이 현상과 명경에게 평일 지성으로 대우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위임하지 못한 탓으로 이런 일이 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하여 더욱 더 부끄러움을 견딜 수가 없다. 이 소장을 내려보내지 않을 수 없으나 차마 내리지 못하겠다. 일단 내려보내면 손상되는 바가 많을 것이어서 차라리 내가 허물을 받는 것이 낫겠기에 이미 태워 버렸다. 사관은 내 허물을 크게 기록하여 후세에 경계하면 좋겠다’”

임금이라 하여 신하가 올린 소장을 함부로 태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선조가 조헌의 상소문을 불태워 버렸다고 실록에 기록하고 있다.

소장이 올라오면 임금은 3일을 넘기지 아니하고 반드시 정원에 내려보내야 한다. 만일 비사가 없고 ‘계’ 자만 찍어 내릴 경우 승지가 소장에서 말한 내용을 해사에 내려 의논하여 고하게 하고 혹 소청을 윤허하면 성지를 받드는 것이 규례이다. 만일 ‘계’ 자를 찍지 않고 내리면 정원이 원각에 간직하는데 채록할 만한 것이 없으면 그대로 두는 것을 유중불보(留中不報)라 한다. 임금이 조헌의 소장을 불태웠으나 위에서 그 사유를 비시(批示 청원에 대하여 지시를 내림)했으면 이를 폐기하지 못하는 것도 규례였다.

선조가 자신의 소장을 불태워 버렸다는 말을 들은 조헌은 다시 옥천 향리로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공주 공암에 있는 고청(孤靑) 서기(徐起 1523~1591)를 찾았다. 서기는 이지함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경서에 밝았다. 그는 고청봉 아래에 충현서원을 창건하고 그곳에서 강학하고 있었다. 조헌이 자신보다 20여 세나 많은 서기와 도의지교를 두터이 하여 각별히 지내게 된 것은 이지함 선생의 권유에서였다. 

조헌을 맞이한 서기는 이번에 절차를 밟지 않고 직소를 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크게 꾸짖으며 “토정 선생이 그대는 원대한 그릇이 될 것이라 하여 내가 태산북두와 같이 바랐는데 어찌 오늘에 진소양과 호담암의 부류가 되고자 하는가?”하고 벽을 보고 돌아앉아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이에 조헌이 “내가 지은 소장을 한 번 보시오” 하고 소장을 내어주자 서기는 머리를 흔들며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조헌 스스로 소리를 내어 상소문을 읽기 시작했다. 조헌이 반도 읽기 전에 서기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의관을 가다듬고 재배를 하더니 “공의 이 소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장차 오랑캐가 됨을 면하게 할 것이니 홍수를 휘어잡고 맹수를 몰아낸 무리와 다름없다”하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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