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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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8)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10.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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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입니다

조헌은 성인(聖人)이다
   
“조헌은 성인(聖人)이다.” 당대에 어의(御醫)를 지낸 의관 양예수(楊禮壽 ?~1600)가 조헌을 일컬은 말이었다. 

양예수는 호가 퇴사옹(退思翁)으로 의학에 신통하여 명종과 선조 양 대에 걸쳐 어의를 지냈으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까지 올랐다. 그는 명종 때에 내의로 있으면서 병약한 순회세자를 치료하였으나 1563년 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그 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다시 예빈시 판관(禮賓寺判官)으로 발탁됐다. 1565년에는 어의가 되어 명종의 총애를 받아 정3품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명종이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내의 일을 접고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10년이 지나서 선조가 서울로 불렀으나 끝내 거절하다가 1580년 선조가 큰 병을 얻자 어쩔 수 없이 조정에 나와 임금의 병을 고쳐서 그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제수받았다. 그는 의림촬요(醫林撮要)를 저술했고 태의로써 동의보감(東醫寶鑑) 편집에도 참여했다.

양예수가 죽자 선조는 “양예수는 의관이다. 그는 의술로 한 세상을 울렸다. 그의 동생 지수(智壽)도 의관이었는데 임진왜란 중에 적에게 잡혔을 적에 적을 꾸짖고 강에 빠져 죽었다”고 실록에 기록하고 있다.

그는 평소 권세가에서 진찰을 요청해 오면 늙어서 다릿병이 있다는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그가 의술에는 유능한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거만하게 보는 이도 없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태의(太醫)로 있던 양예수가 선조를 따라 파천을 가게 되었다. 미처 말을 준비하지 못한 그가 걸어서 일행을 따라가는데 이를 보고 이항복이 “양 동지(벼슬이름) 다릿병에는 난리탕(亂離湯)이 그만이구려”하고 빈정거렸다고 한다.  

조헌은 이러한 양예수와도 교분이 있었다. 어느 날 조헌이 양예수의 집을 찾았다. 마침 여러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있던 양예수가 좌중의 사람들에게 조헌을 소개했다. 그가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분 중에 일찍이 이 분을 본 일이 있느냐”라고 묻자 사람들이 대답했다.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있으나 본 일은 없습니다” 그러자 양예수는 웃으면서 “여러분들이 나의 친구들이기 때문에 이분을 면식(面識)할 수 있으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고 했다.

양예수는 약방(藥方)을 찾아오는 사람이 비록 명향달관(名鄕達官)이라도 맞이하고 돌아갈 때에 문밖까지 나오는 법이 없었다. 더구나 다리에 병이 있어서 더욱 그러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헌이 올 때에는 뜰에까지 내려가서 무릎을 꿇고 절하며 지극한 존경을 표했다. 조헌이 상좌에 앉아 용무를 마치고 돌아간 다음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 연유가 몹시 궁금하여 양예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발의 병으로 인하여 손님을 영송(迎送)하지 않은지가 오래되는데 오늘은 무슨 기운으로 조헌을 공경하는 것이 이토록 지극하냐”

이 말에 양예수는 감탄하며 말하기를 “이분이 평생하는 거지(擧止)는 옛사람들에게서 구하려 하여도 짝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백성에게 인자하고 사물을 아끼는 마음씨는 그분을 성인(聖人)이라고 하여도 옳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분이 전에 제관 벼슬을 할 때에 길을 가다가 좁은 길목에서 장작을 싣고 가는 사람과 마주쳤다. 그 사람이 조헌을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에게 채여 짐을 실은 말이 넘어지면서 장작이 모두 엎어져 버렸다. 그때 이분이 자기를 따르는 사람을 불러 넘어진 말과 장작을 챙겨 보낸 다음에야 자기의 길을 간 일이 있었다. 이런 과정의 일은 이분에게는 예사로운 일이지만 이 한 가지 일만 보더라도 여타의 행동을 알만하다. 내가 의업으로 여러 사람을 접해 보았지만 일찍이 이분과 같은 사람을 본 일이 없다”라며 감탄하기를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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