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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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9)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10.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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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입니다

공의 후덕한 말 한마디가 형벌보다 낫다

조헌은 김포 감정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 뒤에는 작은 산이 있는데 이를 중봉산이라고 했다. 조헌이 자신의 호(號)를 중봉(重峯)이라 하였고 용촌리 뒷산을 그리 부른 것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집 앞으로는 너른 평야가 한강을 연해서 펼쳐 있었다. 감정동은 구두물이라고도 불리었다. 감정(坎井)이란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게 되면 ‘굳우물’인데 이것이 ‘구두물’로 연음되었다고 한다. 

동네 앞 벌판의 동쪽을 흘러서 한강에 합류하는 지류가 있는데 이 합류지점이 나진나루터였다. 나루터 부근에 강심(江心)을 향해 너른 바위가 하나 놓여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대감바위라고 불렀다. 조헌은 어려서부터 이 바위에서 놀며 자랐다. 고향을 떠난 후에도 이곳을 찾아오면 바위에 앉아 한강에 낚시를 드리우고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가 고향을 다녀오던 무렵이었다. 어떤 사람이 오래전에 달아난 종이 모현(某縣)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조헌에게 귀띔해 주는 것이었다. 여러 대(代)를 두고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조헌이 걸어서 그곳으로 찾아갔다. 마침 그 고을에는 전부터 알고 지내는 신언경(愼彦慶)이 부사(府使)로 있었다. 이 사실을 들은 신언경은 형리를 보내 그 종을 붙잡아 왔다. 종은 처음부터 조헌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본래부터 양가의 출신이라고 완강히 주장했다. 이에 노한 부사 신언경이 태(台)를 수십이나 쳤어도 끝끝내 승복하지 않고 자기는 양민이라고 계속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조헌은 종이 매를 맞는 고초를 가엾게 여겨서 신공(愼公)에게 이르기를 “이놈이 과연 나의 종놈이라고 하면 비록 중한 형장을 맞고 죽어도 괜찮겠으나 만일 매질에 못 견디어 거짓으로 승복하게 한다면 이것은 양민을 위협해서 강제로 천민을 만드는 것이니 불가한 일이요, 일이 잘못될까 의심스러우니 강권으로 승복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오. 형벌을 중지하고 정(情)으로 물어봄이 가할 것이오”라고 했다. 

이에 신공(愼公)이 크게 웃으며 하는 말이 “과연 그럴까? 그것은 조공이 몰라서 하는 말이오. 이 자가 도망쳐서 멋대로 산 것만 해도 이미 그 죄가 중하고 또 이놈이 공의 위세를 두렵게 여길만한 것이 없다고 여겨서 요행이 종놈의 신세를 모면하고자 중한 장형을 가하여도 승복하지 않는데 하물며 온화한 말로 물어본다고 하여 어찌 스스로 사실을 고백할 리가 있겠소?”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헌은 신공(愼公)에게 형신(刑訊 정강이를 때리며 문초한 일)을 여기서 멈출 것을 완강하게 만류하니 신공(愼公)도 더 이상 고집하지 못했다.

이때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조헌을 향해 세상 사정에 어둡다고 웃었다. 

조헌이 그 종을 앞으로 불러내어 말하기를 “네가 과연 양민이라고 하면 네가 말한 것같이 하여도 좋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하면 주인을 배반하고 양민을 모독한 것이니 죄는 네게 있는 것이다. 너도 인간으로서 양심이 있을 것이니 물러가 깊이 생각해 보라”라고 하니 그 종이 유유히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조헌과 신언경이 마주 앉아 있을 때였다. 그 종놈이 노모와 자녀들을 데리고 관아에 나타났다.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기를 “누대를 두고 주인을 배반하였으니 소인의 죄가 만 번 죽어도 다하지 못할 것인데 오늘날 주인 어른의 정성스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말씀이 이와 같으니 하늘이 두려운지라 어찌 감히 끝내 주인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스스로 종임을 자백하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신공(愼公)은 경탄해 마지않으며 오래도록 탄복해서 이렇게 말했다.
“관가의 형벌을 가하는 것이 조공(趙公)의 후덕한 한마디 말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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