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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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0)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10.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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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세상은 혼탁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갔다.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관리들은 부패하고 무능했으며 무고한 백성들이 겪어야 하는 무자비한 수탈과 가혹한 진상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조헌의 성품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앉아서만 볼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이러한 폐단을 논하는 상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1589년 4월, 논시폐소(論時弊疏)를 준비한 그는 백의에 도끼를 어깨에 메고 옥천을 출발했다.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를 한다는 것은 임금에게 내 말을 가납치 않겠다면 이 도끼로 내 목을 치라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으로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 생명을 내건 지부상소(持斧上疏)를 하려는 것이었다. 고려 말 감찰규정으로 있던 우탁(禹倬 1263~1342)이 충선왕의 패륜행위를 직간한 지부상소가 처음이었다. 이는 조선조에 들어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가 오랫동안 시정(時政)과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며 생각해 온 바를 실천하려는 것이었다. 상소에는 조정의 과오와 백성들의 참상을 논하고 대신들의 비행을 탄핵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상소로 인해 임금과 대신들은 분노할 것이며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란 사실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옳은 일을 놓고 세력 자에 굴하거나 자신의 안위를 내세우는 것은 결코 선비의 자세가 아니다. 오직 환난을 무릎 쓰고 의리의 신념으로 사회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선비의 책임이다. 그는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알면서도 이를 결행함에 주저하지 않았다.

대궐로 가서 지부상소를 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그는 한양으로 들어가기 전에 김포 선영을 찾았다. 다시는 뵐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조헌은 그런 의미에 제문을 지어 부모님 묘소에 고한다. 

제고비문(祭考妣文)

“만력 17년 4월 8일(萬曆十七年乙丑四月八日) 효자 헌(憲)은 현고(顯考) 모관 부군((某官府君) 현비(顯妣) 모봉 모씨((某封某氏)께 감히 고하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타향에 떠돌아다님으로써 어머님을 봉양하는 일이 매우 고생스러웠습니다. 힘대로 할 것이 농사뿐이므로 조금의 겨를도 없었던바, 봄 한식(寒食) 시절이 되었어도 한 차례 성묘를 못했으니 자식된 도리를 다 못하고 구름만 바라보며 길이 애통했습니다. 사도(師道)의 부색(否塞)함과 국운의 쇠퇴함을 가만히 생각하오니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한 몸이다’라고 훈계하신 말씀이 생각되옵니다. 그리하여 위험한 만언소(萬言疏)를 올리게 되었으나 분수에 넘치고 시대에 기피되는 일에 부딪혀 큰 죄를 얻게 되면 앞서의 훈계를 떨어뜨릴까 두렵습니다. 이에 임금의 명을 기다리는 아침이기에 삼가 어물과 술잔을 갖추어서 공손히 경례를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

주어진 관직도 스스로 벗어던진 조헌에게 무슨 사리사욕이 있겠는가. 오로지 나라를 위하는 충의와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부모님 묘소를 찾아 제를 올린 그는 지체없이 대궐을 향했다. 이때의 심정을 시 한수로 남기는데 ‘성묘 후 대궐에 나아가 상소함(省墓後詣闕陳疏)’이다.

“朝辭考墳哭 아침에 아비 무덤에 이별을 고해 울고 夕向君門去 저녁엔 님 계신 대궐로 향하네 君門倘一開 님 계신 대궐문이 열리면 請陳虞周語 요순문무(堯舜文武) 좋은 정치 여쭈어보렴 我非屈三閭 나는 굴삼려(屈三閭)도 아니고 我非陽諫議 양간의(陽諫議)도 아닌데 三年吃吃不能休 세 해를 더듬더듬 그칠 수 없는 것은 欲爲軍師明大義 님을 위해 대의를 밝히고자 함이다”

그는 자신이 초나라의 굴삼려(屈三閭)나 당나라 양간의(陽諫議)와 같은 충신은 아니지만 임금에게 대의를 밝히는 일은 결코 멈출 수가 없다는 굳은 뜻을 여기에 밝혀 두었다.  

대궐에 도착한 조헌은 논시폐소(論時弊疏)를 제출하고 도끼를 옆에 놓고 대궐 문 앞에 엎드려 어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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