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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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1.11.0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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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모 후보가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습니까?”라고 하여 이를 패러디한 유행어가 퍼진 적이 있었다. 살림살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다. 생활, 삶이라는 말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의미로 그러면서 실감있게 다가오는 말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살림’에 대해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 국가나 집단의 재산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살이’를 덧붙인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살림을 차려서 사는 일, 숟가락, 밥그릇, 이불 따위의 살림에 쓰는 세간으로 풀이하고 있다. ‘살림’은 결국 살아가는 일, 살리는 일이다. 반대말은 ‘죽임’이다.

몇 년 전 우리는 반만년 역사에 처음 있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했었다. Covid-19로 2년째 움츠러든 삶이 펴질 만하니 ‘대장동’이란 해괴한 사건이 터졌다. 평생을 직장에 다니고서 받는 퇴직금이 5억이래도 기가 찰 노릇인데 십년도 다니지 않고 50억이란다. 몇 천만 원 투자하고 몇십, 몇백억을 벌었다고 하니 그들은 살림이겠으나 바라보는 서민들은 죽임의 세월이 됐다.

그렇잖아도 경제가 어렵다, 물가가 오른다, 유래없는 더위로 배추 농사가 안되어 김장담기도 어렵다고 항간에서는 삶의 푸념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어수선한 틈을 타서 온갖 물가는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이런 서민들의 삶에 ‘살림’이 살아가도록 희망을 주는 국가의 ‘살림살이’가 되지 못하고 있다. 흙수저, 금수저로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개념을 뒤엎는 저들을 보며 그래도 밤잠 설치고 책과 씨름한 우리 자녀들에게 이젠 부끄러워 어른이라는 말도 꺼내기 어렵게 됐다. 오죽하면 할머니 머리를 꽃가지로 패대며 “담배 사오라”는 패륜아들이 활개를 칠까?

‘살림’의 정치가 되지 못하면 ‘살아갈 희망이라도 주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미래의 희망, 나라를 이끌어 갈 동량, 앞으로 이 사회의 일꾼 등 온갖 좋은 말로 꼬드긴 어른들, 자기 당, 자기 편의 후보만 옳다고 온갖 주장을 하는 대통령 선거 전, 과연 우리들은 자녀들에게 이런 사회 부조리 사태를 어떤 말로 변명해야 하나? 어른으로 부끄럽다. 

꽤 오래전 어느 국가 대표 선수가 올림픽 대회에서 받은 메달을 국가에 반납하며 “이 나라에서는 삶의 희망이 없다”고 이민을 떠난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하고 생각했지만 이젠 어느 만큼 그 선수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모두가 이 땅을 떠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잘못을 했으니 반성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저력이 있는 민족이다. ‘죽임살이’를 ‘살림살이’로 바꿀 수 있는 민족이다. 수많은 외침에서도 이 땅을 지켜왔고 14년 전 태안 앞바다가 기름에 뒤덮였을 때도 스스로 해변을 찾아 기름 묻은 조약돌을 닦아냈던 우리들이다. 월드컵 축구 경기 때는 뜨거운 포장도로 위에 앉아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던 민족이다. 

그 저력, 그 민족혼이 지금 우리에게 다시 솟구쳐야 한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하며 희망을 갖고 ‘살림살이’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더 밝은 눈으로 그런 오염을 찾아내고 방비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

11월 이제 연말로 향한다. 항상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며’라는 상투적 인사말을 뒤로하고 남은 한 달 남짓, 다가오는 새해에 희망을 주는 나라가 되길 바래본다. ‘죽임’의 정치가 아닌 ‘살림’의 정치로, 가라앉는 삶이 아닌 역동하고 솟구치는 ‘살림살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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