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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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2)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11.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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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시폐소] 백성을 살리는 삼분사일제의 제안

“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같습니다.” 조헌은 강경한 말로 북쪽 변방으로 보낸 이주민들의 비참한 실정을 진술하면서 선조를 이렇게 꾸짖는다.

“칼로 죽이는 것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는 것이나 살인한 것은 같습니다. 전하께서 이 백성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들으시면 반드시 처연히 마음속으로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 어찌 차마 먼저 백성의 산업을 관리하지 아니하고 그저 백성을 옮기는 명령만 급급히 내리신단 말입니까. ”

선조의 실정을 정면으로 비판한 조헌은 백성들이 죽어가는 사북령(徙北令)의 폐해를 방지하고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이주 방책을 내놓는다. 먼저 이주민이 먹고 입을 수 있는 산업대책을 마련할 것과 이주 대상을 셋으로 나누어 점차적으로 옮기는 삼분사일제(三分徙一制)였다.

“지금 백성의 산업을 관리하는 데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현재 쇄환시키는 문서에 기록되어 당연히 옮겨야 할 백성들에 대해서 그 가운데 노약자는 그대로 남쪽 지방에 살게 허락하되 그들의 소원에 따라 해마다 공목(貢木 무명)을 납입하게 한 다음 관에서 역마로 운송하여 토병(土兵)의 남녀로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에게 1필씩 나눠 주어 둔전을 개간하게 하소서. 그렇게 하면 토병의 남녀가 추우면 옷을 입게 되고 굶주리면 이를 팔아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오랑캐 지방의 찌꺼기를 빌어먹기 위해 몰래 왕래하면서 나라의 계책을 누설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주 대상자 중에서 노약자는 그대로 남쪽에 머물러 살면서 베를 짜게 하고 이를 북방으로 먼저 간 이주민에게 공급해서 최소한의 살 방도를 마련해 주고 이들로 하여금 둔전을 개간하여 다음에 오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농토를 마련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시간을 두고 먼저 살 방도를 강구한 다음에 순차적으로 이주시키라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새로 개간한 전지의 수확이 점차 축적되어 신호(新戶)를 부양할 수 있게 된 뒤에 각 진(鎭)으로 하여금 개간한 전지가 몇 결(結)이 되고 신호 몇 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가를 갖춰 보고하게 하여 곧 호조와 병조로 하여금 상의하여 현재 쇄환시키는 문서에 따라 장정이 많은 호구를 먼저 선택하여 점차 들여 보내소서. 그리하여 간혹 문관인 부사(府使)와 판관(判官)을 배치하여 조종 조(祖宗朝)처럼 십분 다독거려 배양시키게 하소서. 그리하여 세 종류의 문서로 나뉘어 궐(闕)을 징수하는 폐단을 제거하되 초피(貂皮)를 경상(卿相)의 집에 바치는 자는 아대부(阿大夫)로 지목하고 태형과 장형으로 교정하는 규정을 회복하되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잔인하게 죽인 자는 엄벌에 처하소서.”

둔전이 개발되고 그 다음에 새로운 대상자를 실정에 맞게 이주시킨다면 백성들이 정착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과도한 세금과 관리들의 횡포를 방지할 대책까지도 함께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북방 국경은 튼튼해지고 백성들은 충성을 다하고 굳이 남쪽에서 군대를 뽑아 보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구(新舊)로 이사한 백성이 소도 있고 자기(磁氣)도 있어 농사에 힘쓸 수 있다면 요새 밑의 황전(荒田)이 낙토가 되지 않을 곳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후에 전법(戰法)을 교련시키되 효제충신(孝弟忠信)을 우선적으로 하고 시어(射御 활쏘기와 말 타기)를 잘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며 원대한 꾀가 뛰어난 자는 뽑아서 쓰십시오. 그들이 윗사람을 잘 섬기고 어른을 위하여 죽는 것이 의리인 줄 알게 된다면 몽둥이로 오랑캐를 칠 사람이 토병과 이민에서 반드시 나올 것이며 남녘땅의 정병을 해마다 뽑아 보낼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삼분사일제(三分徙一制)는 참혹한 백성들의 삶을 안타깝게 여긴 조헌의 개혁적인 제안이었다. 여기에는 백성들을 걱정하는 애민정신이 가득 배어있다. 이 제안은 북방의 국경지방으로 강제 이주하는 백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뛰어난 방책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선조가 이를 채택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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