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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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 김기순 수필가
  • 승인 2021.11.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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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안은 예전 같지 않게 한산하다. 아직 대낮인데 군데군데 셔터가 내려져 있는 가게도 있고 옹기종기 앉아있던 노점상 아주머니들은 띄엄띄엄 쓸쓸하기 그지없다. 코로나19 시국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빚어낸 현상이다. 

마스크착용은 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필요한 몇 가지를 사들고 부랴부랴 시장을 빠져 나오는데 노란 모과가 눈길을 끈다. 발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리자 아주머니는 물을 것도 없이 만원에 세 개라며 비닐봉지에 모과를 주섬주섬 담더니 어서 받으라는 눈짓을 한다. 

그러지 않아도 목감기에 좋다는 모과 청을 담그고 싶었는데 마침 잘되었다 싶어 돈을 지불하고 봉지를 받아 들자 아주머니는 싱긋 웃으며 작은 모과 하나를 더 넣어 주신다. 올 겨울 감기는 모과 청이 지켜줄 거라 생각하니 횡재라도 한 양 발걸음도 가볍다. 

모과를 깨끗이 씻고 꿀과 유리병을 준비하고 모과를 자르려는데 너무 단단해서 자를 수가 없다. 잘라지기는 커녕 칼끝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게 뭔 일이람. 무슨 과일이 이렇게 돌같이 단단한 거야’ 

모과를 잡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실랑이를 하려니 힘도 들고 괜히 사온 것 같아 후회가 된다. 

모과는 향도 좋고 색깔이 예뻐서 방이나 거실에 놓아 두기도 한다. 그러나 거실장 위에 올려놓기는 이미 늦었다. 여기저기 칼집으로 곰보가 되어버린 데다 거무튀튀한 것이 금방 썩어버릴 것 같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딱딱하고 그야말로 처치곤란 계륵이 따로 없다. 

어쩜 이런 해괴망측한 과일이 있단 말인가. 자를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과일이 무슨 과일이냐며 타박바가지를 퍼붓는데도 모과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조금 전까지 햇병아리처럼 예뻐 보이던 모과가 울퉁불퉁 옹고집 못난이 중에 못난이로 보인다. 과일 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더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강해도 적당히 강해야지 너무 강하면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뜻을 같이 하기 어렵다. 사람살이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는 고집불통이 있다. 이런 사람을 좋게 말하면 신념이 굳은 사람 뚝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때론 꽉 막힌 답답한 성품으로 대사를 그르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나도 가끔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의 주장은 고집이 아니라 소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 단단한 모과처럼. 내가 소신이라며 고집을 피울 때 상대방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무리 당연한 소신이라 하더라도 상대방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내 주장만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소신이 아니라 고집인 것을.

대선이 머지않았다. 요즘 정치판은 대선 후보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시끌시끌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서로 물고 뜯고 듣기에도 민망한 비방으로 상대방을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다. 

어렸을 때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슴벌레싸움을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저런 이기와 옹고집으로 과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 봉사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물론 그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겠지만 지나치게 상대방을 비방하고 헐뜯는 모습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엉뚱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고 에너지를 소비하느라 국민들이 알고 싶고 듣고 싶은 정책은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는 행태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의 정서와 의식 성숙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지나친 비방이나 네거티브에는 염증을 느낀다.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강한 호기보다는 국민의 마음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유연이 필요하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 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어한다는 뜻이다. 부드러움으로 상대방 뿐만 아니라 자신도 제어할 줄 알아야 진정한 강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명분없는 강자보다는 국민의 상처를 달래주고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정책이 투명한 곳으로 유권자의 마음은 움직일 것이다.  

모과는 여전히 ‘아무리 칼을 들이 대봐라 내가 꿈쩍이나 할 것 같으냐’ 하고 버티고 있다. 너무 강해서 함께 뜻을 도모할 수 없다면 여탈폐사가 답이다. 감기에 좋은 것이 모과 뿐이더냐. 덤까지 주신 아주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말의 고심없이 모과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오늘 모과 청 담기는 실패를 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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