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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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1)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1.25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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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

대한항공 국제선 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때로는 ‘이 일이 내가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가’에 하는 의문을 가졌고 나에게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KBS 아나운서 공채’ 광고를 보게 되었다. 불현듯 방송국에서 일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시험이나 한번 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원서를 넣었다. 1972년 당시 KBS는 남산에 있었고 지금의 한국방송공사가 아니라 국영방송국이었다. 아나운서 시험은 서류심사, 필기시험과 화면테스트 그리고 면접이었다. 

900여 명이 지원했고 최종 5명을 선발하는 시험이었다. 늘 그랬듯이 1차 서류심사, 필기시험은 영어, 논문 등 다른 직장 시험과 같았지만 지금까지의 시험과 다른 것은 방송국 아나운서를 선발하는 시험이라서 화면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사방팔방이 온통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방으로 들어가 데스크에 앉자 원고를 주었다. 원고는 뉴스 내용이었고 이 원고를 읽는 동안 밖에서는 방송국 심사위원들이 화면을 보고 평가하는 형식이었다. 내가 원고를 다 읽고 화면테스트가 끝난 후엔 면접시험이 있었다. 내 차례가 왔다. 방송국장을 비롯한 5명의 면접위원 앞에 앉 았다. 첫 질문이 대한항공처럼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왜 KBS에 지원했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 질문만큼은 좀 난처했다. 내가 현 직장에 대해 어떤 특별한 불만이나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지루한 마음에 우연히 신문을 보고 지원한 터라 그대로 솔직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평소 언론계에도 관심이 있던 터라 마침 신문광고에 아나운서 공채 공고를 보고 원서를 내게 됐습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여러가지 질문을 받았다. 방송국장은 대한항공에서 월급을 얼마 받고 있는지까지 물었다. 이때 내 대답은 이랬다.

“제가 알기로는 방송국장님 월급보다는 조금 더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심사위원들이 동시에 크게 웃었다. 당시 방송국장 비서가 대한항공 친한 친구의 고등학교 동창이라서 국영방송인 방송국장의 월급이 5만 원 정도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KAL에서 남자직원보다 특별대우를 받고 있어서 월급이 55,000원이 넘었다. 마지막 한 심사위원이 내게 “만일 KBS에 합격한다면 바로 출근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아니요, 곧바로 출근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항공 복무규정에 사직은 한 달 전에 통보해야 하므로 지금 사표 내면 한 달 후부터 근무할 수 있습니다.”

내 답변에 심사위원들 표정이 뜨악했다. 다른 지원자들은 합격만 시켜준다면 당장 내일부터라도 나오겠다고 하는데 내 답변은 뜻밖으로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방문을 나서는데 한 PD가 자신을 소개하며 내게 물었다.

“면접하는 걸 지켜보자니까 송지호 씨는 아나운서보다는 MC를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어 회화가 되면 지금 우리가 외국인 대상 프로그램 MC를 찾고 있는데 어떠세요.”

내 생각에도 써서 주는 원고를 읽는 역할의 아나운서보다는 창의성이 필요한 MC가 내게 더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 PD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자 그 PD는 방송국장님과 상의해서 나중에 MC로 빼도록 상의하겠다고 했다.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왔다. 그런데 발표가 있기 일주일 전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KBS 아나운서실장 홍두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용 인즉 합격자 명단 5명 중에 내가 들어있는데 마지막 합격자 사정 회의에서 어떤 심사위원이 합격자 발표하기 전에 나에게는 먼저 한 가지를 확인해볼 할 사항이 있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홍 실장이 내게 물었다.

“정말로 KAL을 그만두고 KBS에 근무할 결심을 굳혔나요?”

KBS에서는 필요한 인원 5명을 뽑아 1년 동안 수습 아나운서로 많은 비용을 투자해서 교육하는데 만일 합격하고 나서 내가 그만둔다면 한명을 선발하기 위해 다시 시험을 볼 수도 없고 방송국으로서는 난감하게 되니 그 점을 꼭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이유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하나는 방송국장 월급보다 현재 KAL에서 받는 내 월급이 더 많다는 말이 걸렸을테고 또 합격 후에도 근무는 KAL 규정 때문에 한 달 후에야 가능하다는 내 말도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몇 가지를 확인했다. 

“제가 KBS에 입사하면 월급은 얼마이고 대우는 어떤가요?”

“언론계는 선후배 위계관계가 상당히 엄하고 입사하면 수습 기간 1년을 거쳐야 해요. 그리고 첫 월급은 8천 원이고요.”

나는 무엇보다도 월급이 8천 원이라는데 정이 떨어졌다. 아무리 국 영방송이라 공무원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5만 5천 원 정도로 특대우를 받는 내가 신입이 되어 다시 밑바닥부터 직장생활을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홍 실장에게 2~3일 말미를 주면 생각하고 결정하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3일 후 홍 실장은 나의 확답을 듣기 위 해 다시 전화를 주었고 나는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KBS에 가기는 좀 어렵겠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현실론적인 결정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당시 나로서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세월이 흐른 후 홍두표 아나운서실장이 한국방송공사 사장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며 그때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대한항공 최초의 기혼여성 발령

KBS 아나운서를 포기한 나는 대한항공에서 열심히 내 일을 했고 제법 전문성도 인정받았다. 그즈음 1973년 4월 29일, 갑자기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후 35일 만에 결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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