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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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12.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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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 과거 여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 중에서도 일국의 운명을 쥐락펴락했던 인물은 누가 있을까.

16세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빼 놓고 여성 지도자를 운운하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그만큼 그녀는 남성 못지 않은 기개와 배짱은 물론 치밀한 계략까지 겸비한 여걸 중의 여걸이었다.

당시 영국은 인구래야 겨우 350만에 국고 수입 역시 30만 파운드가 전부였다. 더욱이 국내 상황은 신교와 구교로 분열되어 늘 불안의 연속이었으며 통상 역시 부정 통화에 가난마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 상황이었다.

그때 등장한 한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엘리자베스 1세’였다.

사실 엘리자베스 1세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그녀의 나이 두 살 때 어머니 앤 불린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 헨리 8세의 미움을 사 처형이 되고 말았으며 동시에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결혼이 무효라고 선언하고는 엘리자베스를 사생아로 치부해 버렸다.

설상가상 아버지 헨리 8세가 죽자 뒤를 이은 배다른 동생 에드워드 6세와 언니 메리 1세로부터 모반을 꾀했다는 이유로 런던탑에 유배되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고통은 훗날 엘리자베스가 영국을 통치하는데 든든한 바탕이 되었음은 자명한 결과였다.

그녀의 나이 25세에 이르자 엘리자베스는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러자 스페인과 프랑스, 덴마크 등 전 세계로부터 프러포즈가 들어 왔다. 물론 그들의 계획 속에는 영국을 집어 삼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은 말할나위 없었지만.

문제는 당시 유럽에서 주도적 입장에 있던 스페인과 프랑스가 서로 손을 잡아서는 안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1세는 그들 국가의 프러포즈를 단박에 거절하기보다는 양국에 대해 마음을 주는 척 하다가 멀어지고 멀어지는 척 하다가 마음을 주는 식으로 동맹을 맺지 못하도록 애간장만 태웠다.

그래도 집요하게 치근거릴때면 엘리자베스는 1세 “나는 이미 국가와 결혼을 한 몸”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넘겼다. 하지만 그러한 말을 한 그녀의 진짜 이유는 만에 하나 외국의 군주와 결혼을 하면 영국이라는 나라는 그 나라의 도구로 쓰일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국내 귀족과 결혼하면 귀족들의 파벌 싸움에 휘말릴 것이 불을 보듯 훤하기에 둘 다 포기를 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가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세계 정치사를 썼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재임 기간 동안 편 영국 정치를 보면 자연 고개가 끄덕여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진짜 이유다.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국내적으로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고 있던 종교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영국 국왕을 영국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 하는 법률인 ‘국왕지상법(國王至上法)’을 제정, 영국의 국교주의를 확립했다. 물론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최대 고민거리였던 종교 문제를 일시에 해결했다는데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웃 나라 스코틀랜드에서는 귀족들의 반란이 일어나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6촌 언니인 엘리자베스 1세에게로 도망쳐 나온 일이 발생했다. 이때 엘리자베스 1세는 일단 도와주는 체하다가 무려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옥에 가두어 신음토록 했다. 이때 이 사건이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평생의 오점으로 남긴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메리는 헨리 7세의 증손녀로 영국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구교도였던 것이다. 그러한 그녀를 우대할 경우 엘리자베스 1세 치세에 불만을 품은 가톨릭 귀족들에게는 안성맞춤 반란 명분을 주게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메리 1세는 19년이라는 세월을 유폐 당하다 ‘엘리자베스 암살계획’이라는 주도자로 몰려 처형되고 말았다.

‘엘리자베스 1세’, 세계는 그녀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당시 영국이 처한 상황에서 볼 때 그녀만큼 당차고 야무진 지도력을 발휘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풍전등화와도 같이 단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헌신할 그런 사람은 없는 걸까, 그것도 “나는 이미 국가와 결혼한 몸”이라는 말로 일신의 행복은 물론 모든 특권을 포기할 그런 사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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