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정과 명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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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정과 명 세종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12.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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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 옆에는 그를 지도하는 사람이 존재했었다. 그는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그때그때 적절한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늘 국가(지역)의 안녕과 평화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러한 행태는 유효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의도와 달리 지도자의 심중을 역이용, 자신의 위치를 넘어서는 우를 범하기 마련이다.

때는 명나라 목종 시절, 대학사 장거정은 출중한 재능의 소유자로 황제의 신임과 총애를 한껏 받고 있었다. 목종이 사망하고 신종이 즉위해서도 그 자리를 줄곧 유지했다. 이유는 목종이 죽기 전에 장거정 등 세 명의 대신에게 새 황제를 보좌하여 정사를 처리하라는 유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장거정은 신종이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보(首輔 대신)에 임명되었다. 그는 목종의 유지에 따라 실제로 스승처럼 신종을 지도했다. 화보가 실린 역사고사서 ‘제감도설’을 편찬하여 매일 같이 신종을 가르쳤다. 어린 황제인 신종은 당연히 좋아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응했다.

하루는 장거정이 ‘한문제가 세류에서 군사를 위문한 고사’를 가르쳐 준 뒤신종에게 물었다.

“폐하, 언제나 군사방어에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의 태평성대가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으나 동시에 군사방비는 날로 소홀해지고 있음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신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심하겠노라고 했다.

또 한번은 장거정이 “송 인종이 재물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신종이 말했다.

“군주는 현신들을 보배로 여겨야 옳습니다. 금은보화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겨우 열 살된 소년 황제의 영특한 대답에 장거정은 크게 기뻐했다.

이렇듯 장거정은 신종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끝없는 자신만의 성을 구축해 나갔다. 목종이 사망한 뒤로 태후와 환관 풍보(馮保)의 적극적인 지지 하에 조정의 대사를 관장했으며 군사와 정치, 경제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과 정비를 단행했다. 장거정 자신이 황제가 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당시 명나라는 황하의 범람이 잦아 광대한 농토가 물에 잠겨 농업과 운수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이에 장거정은 치수담당관인 반계순에게 수리공정을 명했다. 반계순은 제방을 쌓고 무너진 제방을 보수하여 황하의 범람을 방지하고 운수를 원활하게 하여 농업생산력을 크게 증진시켰다.

또, 대지주들이 토지를 겸병하고 탈세하는 행위가 성행해 대지주들은 부유해지는 반면 국고는 날이 갈수록 비어만 갔다. 이때 장거정은 전국적인 토지조사를 실시하여 황실친족과 호족지주들의 탈세행위를 적발해냈다. 이렇게 해서 세금은 안정적으로 걷혔고 국고 역시 날로 늘어갔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장거정의 종횡무진적인 행동을 대지주들과 황실친족들이 가만둘리 없었다. 

1592년, 장거정이 병으로 죽으면서 신종이 직접 정치를 관여했다. 그러자 장거정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대신들이 저마다 그의 전황을 탄핵하기 시작했다. 결국 신종은 장거정의 모든 관작을 폐하고 사람을 보내 장거정의 집을 수색토록 했다. 그의 자손 10명은 집안에 갇힌 채로 굶어 죽게 했고 큰아들은 고문을 당한 후 자살하고 말았다. 장거정의 개혁조치 또한 폐지되면서 이제 막 전기를 맞이했던 조정은 또 다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다. 사람이란 누구나 처음에는 자신의 계획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일단 지도자로부터 신임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소리소문없이 하나 둘 야욕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장거정 역시 사람이었던지라 결국 그러한 행위를 하고 말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사회에는 장거정과 같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언제부턴가 마치 자신이 지도자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고 안하무인적인 행동을 보일때면 당사자보다는 그러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신임을 해주는 지도자가 더 불쌍하게 보인다. 더욱이 그러한 내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지도자는 결국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을 나락의 끝으로 몰아세우는 우를 범하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고쳐본들 이미 때는 늦어버리고 만다. 

모름지기 지도자란 자신만의 분명한 철학과 중심을 갖고 어느 누구의 말에도 흔들림이 없도록 매사에 자신의 언행과 사고에 대해 점검을 하고 또 점검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한 지도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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