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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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상상
  • 김동진기자
  • 승인 2021.12.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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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겨울 한파로 첫눈이 내리는 창밖은 동화 속 풍경이 그려지고 있다.
12월 겨울 한파로 첫눈이 내리는 창밖은 동화 속 풍경이 그려지고 있다.

상상의 시간

“아빠 지구는 나이가 몇 살이에요?” 천진스런 꼬마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신문을 읽고있는 아빠에게 질문을 했다.

“지구는 말이지 나이가 참 많단다. 얼마나 많냐면 말이지. 아빠의 아빠, 할아버지의 아빠, 또 할아버지의 아빠보다도 훨씬 오래 되었단다.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단말이지.”

“손오공이 하늘을 날고 하늘나라에도 왔다 갔다 하며 못된 요괴들과 싸우며 혼내줬다는 이야기 알지. 그 손오공보다 훨씬 이전에 세상에 공룡이 살았었단 말이지. 그 공룡이 살던 시대도 아득한 훨씬 훨씬 옛날의 이야기인데 그보다 오래전에 우리 지구가 태어났단다”

“지구는 처음 태어났을 때 굉장히 뜨거웠단다. 뜨거운 물이 끓는 것처럼 말이지. 세월이 지나고 지구에 많은 변화가 발생하면서 지구의 모습이 점차 달라지며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아름다운 별이 되었단다”

“저 하늘을 봐! 밤하늘에 아주 많은 별이 보이지.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나는 저 별에서 바라보면 우리 지구도 아름다운 별의 하나란다. 저 수많은 별 중에 우리 지구는 45억 년 전에 태어났단다. 우리 지구의 나이는 45억 살이란다”

“우와! 우리 지구의 나이가 그렇게 많아요. 굉장해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꼬마 아이는 반짝 반짝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릴 적 밤하늘은 상상을 그려가는 도화지였다. 하늘에 손오공이 날아다니고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눈 내리는 하늘에 루돌프 사슴마차를 탄 산타할아버지가 날아다니는 상상을 그렸으니 말이다. 

그땐 만화 속 세상도 진실처럼 믿었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짓지 못했던 순수하고 철없던 시절이었다. 어떤 이야기도 믿고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 시절의 겨울은 더 많은 이야기와 상상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즐겁고 그럴수록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헤아리던 날도 많았다.

밤하늘은 무궁무진한 별들이 잔치를 열고 동화 속 주인공들이 나와 축제를 펼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이야 아쉽지만 그때의 밤하늘에 내리는 하얀 눈은 달콤한 솜사탕 같았다.

기다리는 겨울 손님

겨울이 되면 언제나 기다리는 손님, 하얀 눈과 새하얀 세상이었다. 새하얀 세상은 꿈만 같고 만화 속 친구들과 산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들기 전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새겨진 카드를 산타 할아버지께 주기 위해 매달아 두고 잠들기 전 걸어둔 양말에는 밤새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시면서 선물을 담아두신다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모두의 어린 시절 순수함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마음은 새하얀 눈을 겨울내내 기다리기도 했었다. 하얀 눈은 밤새 몰래 다녀가며 하얀 세상을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긴 겨울 동안 모른 채 지나쳐 버리기도 했다. 기다리는 그 어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한파가 몰아치더니 급기야 12월 초순임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하얀 눈이 펑펑 쏟아졌다. 정말 눈을 의심하고 싶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겨울 눈은 무척 반가운 손님이다.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귀하고 귀한 눈이다. 

부산에선 ‘아는 이가 겨울에 서울 간다면 눈이라도 담아 주라’고 할 정도이다. 이 귀한 눈, 그러다 보니 나는 눈에 대한 조금의 환상을 가지기도 했다. 눈이 많이 내릴 땐 눈 치우던 군대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하얀 눈을 만나면 금세 잊어버렸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눈 내리는 풍경, 새하얀 동화나라를 그리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눈내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기도 지나는 사람들의 발자국 수를 세어보며 금세 쌓인 눈으로 발자국을 지우는 재미난 장면이 신기하기도 했다. 마치 서커스 곡예를 구경이라도 하듯 푹 빠졌다.

그날은 우산 쓰고 가는 사람이 눈사람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하얗게 눈으로 덮었다. 

지금은 너무도 변모한 대도시이지만 어릴 적 주변은 논과 밭, 개울이 흐르고 짚을 이어 만든 흙담 집도 있던 시골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도시의 높은 빌딩, 깔끔하게 정리된 가로수와 정원수에 새하얀 눈이 쌓여가는 모습을 조용히 감상했다. 산과 들, 지붕, 흙담, 장독에 하얀 눈으로 차곡차곡 쌓았던 그때도 이렇게 소리 없이 수북이 쌓였을 것이다. 

기상이변일지도 모를 이른 시기, 전국은 북쪽의 찬 대륙성 제트기류가 남하하며 사나운 동장군이 오래도록 머무르고 있었다. 전국에는 한파에 폭설이 겹치며 벌써 힘겨운 겨울을 예고했다. 일기예보도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한다는 예보를 했다. 하얀 세상에 설레고 즐겁던 12월의 겨울날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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