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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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흥주 옥천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6.07.2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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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골 밭에 가서 제초제를 뿌리기로 하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제초제, 분무기 등 필요한 물건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한번 집을 나가려면 차 시동 걸어놓고 방안엘 보통 서너 번은 들랑거려야 챙길 걸 빠트리지 않는 게 내 모습인지라 신경을 많이 썼다. 농기구도 농기구지만 몸에서 가장 가까이 두는 물건인 휴대폰에 돋보기, 날이 더워 먹을 물은 꼭가져가야 한다.

몇 번을 가져갈 물건의 목록을 살피고 챙겨서 차 트렁크에 넣었다. 시골 밭을 가려면 기름 값은 좀 들지만 즐겁다. 요즘은 산 날망에 있는 밭까지 농로가 생기고 시멘트 포장이 돼서 아주 좋다. 길이 좁은데다 많이 꼬불거리고 경사가 하도 심해서 그런길로 산 날망까지 차가 올라가는 게신기하기만 하다. 코란도가 사륜구동이 아니라 일단기어로 가도 숨이 턱에 닿아 젖 먹던 힘까지 다 토해낸다.

며칠 전 농로포장은 끝났는데 마지막 정리가 아직 안돼서 밭 밑에 전에 뚫린 농로에 차를 대고 오십여 미터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뒷정리만 끝나면 내일이라도 밭에까지 차가 들어간다. 밭은 숲으로 둘러싸이고 공기도 엄청 좋아서 여기만 오면 맑은 공기로 속을 완전히 씻어 내리는 느낌이다. 부모님께서 부치던 밭이라 내가 그냥 다니며 들깨 같은 쉬운 농사를 짓는다.

차를 세우고 분무기 등 챙겨 온 농기구들을 내리다 아연실색을 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노래졌다. 전쟁터에 오며 총을 놓고 왔다. 제초제를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나는 울상이 되어 괜히 차의 엉뚱한 곳까지 뒤졌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싶다. 여기가 어딘가. 첩첩산중이다. 이 산중에서 나올 건 멧돼지 밖에 없는 곳이다.

나는 사색이 되었지만 나이 탓인지 요즘엔 이상하게 이런 때 갑자기 침착해지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리 곤경에 처해도 곰곰 생각하면 좋은 수가 생기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때 취할 차선책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 먼데까지 왔다가 그냥 집으로 가서 약을 가지고 다시 또 올 수는 없다. 집보다 가까운 안남으로 가서 제초제를 사오기로 했다.

집까지 가는 반 거리를 안 가도 갔다 올 수 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안남으로 차를 몰았다. 안남농협으로 가서 제초제를 한 병 사서 밭으로 다시 왔다. 에이, 휴우! 이게 뭔 고생이냐! 옛날엔 금강물이 발아래 보이고 사방이 확 트여 좋았는데 지금은 아름드리나무가 꽉 차서 시야는 좀 답답하다. 바람이라도 불면 푸른 나뭇잎이 부옇게 흔들리며 너무도 좋은 소리가 난다. 적막한 숲속의 산바람 소리, 황홀하다. 전엔 여기 주변이 초원이었다.

옛날엔 산야가 전부 민둥산이었으니 이런데서 아름드리나무를 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곳엔 잔대, 산도라지 등이 널렸었다. 지금은 수목과 수풀이 우거져 그런 건 다 없어졌다. 옛날 열대지방에나 있던 밀림이 생긴 게 요즘의 우리나라 산야다. 수풀이 우거지고 앞이 안보여 산속에 들어가면 길을 잃고 헤매기가 딱 좋다. 조심할 일이다.

여긴 내가 아기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 뒤를 따라 다니던 밭이라 그런지 신기하게 오기만 하면 맘이 편안 해진다. 바로 옆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가 있고 좀 밑에는 어머니 아버지 산소도 있다. 지금 생각엔 나도 나중에 이리로 오려고 한다. 내 집터이니 맘이 편안해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밭에 큼지막한 멧돼지 발자국 도장이 꽉꽉 찍혀있다. 발자국이 이 정도면 이놈이 얼마나 클까 상상을 해본다. 주변엔 한 사람도 없다. 그래도 뭐 무섭다거나 그런 건 없다. 저게 멧돼지라 괜찮지 늑대나 곰 등 다른 맹수라면 여기에 혼자 올 생각도 못할것이다. 따라서 시골 경작지는 거의 묵혀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농사를 한다고 하면 다들 이야기 한다. 그곳에 작물을 심을 수 있느냐고. 무슨 소리 인고 하면 멧돼지나 고라니 때문에 작물이 남아나 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들깨를 심었다. 그건 고라니도 안 먹고 멧돼지도 안 건든다. 밟아 뭉개기는 할 수 있어도. 그곳에 고구마나 옥수수, 콩 등 다른 작물을 심으면 멧돼지 식사용 밖에는 안 된다. 시골엔 논에도 짐승이 들어가 나락을 엉망으로 만든단다. 그래도 농부들은 말이 없다. 그냥 참을 수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고라니나 멧돼지들을 퇴치해주면 좋을텐데 그렇게 하겠다는 누구도 없다. 보호하자는 사람은 많아도. 다시 가서 사온 제초제를 친다. 날이 푹푹 찐다. 어제부터 장마 비가 그치고 여름해가 본때를 보이고 있다. 요즘은 한낮 더위는 피해야 한다.

아침 일찍 서둘러 일한 다음 한낮엔 쉬고 오후 햇볕이 누그러진 후에 다시 일을 해야 한다. 나이든 사람일수록 더위를 조심해야 한다. 한데 농촌이 완전 고령화해서 걱정이다. 날은 덥고 힘은 들어도 맑은 공기라 기분은 산뜻하다. 내년엔 여기에 원두막이라도 하나 세워야겠다. 일하다 앉아 쉴 곳이 필요하다. 숲속이라 운치도 괜찮을 테고. 거기서 글이라도 쓴다면 더욱 멋질 것이다.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야겠다. 오전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땀으로 범벅을 하고 힘은 들었어도 맑은 공기로 속을 훑어냈으니 기분은 상쾌하다. 건망증으로 난감했던 일은 잊어버리고 장마 비로 댐 물이 불어난 강을 끼고 기분 좋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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