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간지고’ ‘비방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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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간지고’ ‘비방지목’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2.01.0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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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임금이 살던 집은 갈대지붕에 세 층의 흙 계단이 딸린 보잘 것 없는 집이었다. 음식은 대부분 현미와 야채를 주식으로 했다. 

겨울에는 겨우 한 장의 녹피(鹿皮)로 추위를 견뎠고 의복도 너덜너덜 해어지지 않으면 새옷으로 갈아 입지 않았다. 

또 나라 안에 한 사람이라도 배고픔에 허덕이거나 죄를 범한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사기’에는 요 임금의 사람됨을 “그의 인(仁)은 하늘과 같고 그의 지혜는 신(神)과 같다. 백성들은 그를 해처럼 따랐고 구름처럼 바라보았다. 부귀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았고 사람을 깔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요 임금은 총명하고 인정이 깊었으며 하늘의 뜻을 받들고 백성들을 자신의 어린 자식처럼 사랑하는 선정(善政)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은 모두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며 태평성대를 누렸다. 요 임금은 비록 임금이었지만 남에게 뽐내거나 상대방을 업신여기지 않았으며 오로지 올바른 정치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요 임금은 정사가 독단에 흐를 것을 염려해 ‘감간지고’(敢諫之鼓 궁문 앞에 커다란 북을 매달고 누구라도 북을 쳐서 정치의 불합리한 점을 거리낌없이 말하도록 함)와 ‘비방지목’(誹謗之木 궁문 다리 앞에 네 개의 나무로 엮은 기둥을 세워 놓고 누구라도 정치에 불만이 있으면 그 기둥에 써 붙여서 자신의 주장을 써 놓도록 함)을 실천했다.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 우리는 코로나19도 모자라 오미크론이라는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너무도 힘든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다고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어쩌면 더 강하고 치명적인 또 다른 바이러스가 덮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서민들의 삶이 너무도 절망적이다는데 있다. 아니, 어쩌면 자포자기 상태인지도 모른다. 

사실 가진 자 들이야 그동안 축적해 놓은 것 하나 둘 쓰면 될지 몰라도 서민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한 나머지 당장에 급한 먹을거리조차 헉헉대고 있는 처지다. 그렇다고 가진 자들이 선뜻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열지도 않는다.

더욱이 올해는 대통령과 지자체 장 그리고 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각종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어쩌면 과거와는 달리 매우 힘겹고 어지러운 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대통령에, 누군가는 군수에 그리고 누군가는 군의원으로 선출될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기왕 나라의, 지역의 지도자로 선출이 된다면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는 행정(정치)을 펼치길 기대해 본다. 과거와 같이 그저 임기 때우기식에 대우만 받으려는 지도자가 아니라 요 임금처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까지는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러한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선출직 인물이란 말 그대로 해당 지역의 발전과 지역 주민들의 애환을 보듬고 해결해 주며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유권자들의 피같은 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세월 우리네 선출직들을 보면 유권자는 오간데 없고 그저 자신들만 잘먹고 잘사는데 급급했다는 이미지를 떨쳐 버릴 수 없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촌각을 다투어 지구촌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유독 선출직들만 과거로 회귀하려는 모습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세 치 혀로 유권자들을 기만하고 이용하려는 말만 번지르한 협작꾼들은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과거 우리는 그런 사람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피해를 보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그런 사람이 두 번 다시는 선출직에 나서지 못하도록 경계에 경계를 해야 한다. 정에 끌려, 학연·혈연·지연에 얽매여 손을 들어 준다면 우리는 4년 전 아니 4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언제쯤 우리는 진정으로 민의를 살피고 챙겨 주는 그런 인물들을 만날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가식과 허언이 아닌 참된 지도자를 만나볼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분명한 정체성(Identity)을 지닌 그런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요 임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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